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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월 28일] 따뜻한 색 블루

입력
2014.01.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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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차가운 색이라고 말한다. 색이 갖는 심리적인 면에서의 온도감이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이 상식 밖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영화이다. 색채의 보편적 의미가 아닌 맥락속의 색채를 중요시해왔던 나의 생각을, 제목에서부터 읽을 수 있어 반가운 영화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기 전에는 파랑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키에슬롭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였다. 억제된 슬픔을 열연했던 쥴리엣 비노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는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는 비극적인 삶, 그리고 죽은 남편에게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 이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모든 것과 단절하려다가, 정신적 자유란 결국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짐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이다.

제목에서처럼 영화는 온통 블루이다.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주인공의 어둡고 불안함 심리를 반영하듯 파랑은 그녀의 눈, 얼굴, 그녀가 있는 공간을 투사한다. 그 무겁고 침잠된 고독, 공허함을 표현하는 것들은 파랑이다. 칸딘스키가 파랑은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져 간다고 했던 것처럼 영화 속의 파랑도 탈중심적인 색채로 멀고 아련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파랑은 차디찬 억압이 아닌 자유의 파랑으로 온기가 스며든다.

'블루'보다 좀 더 밝은 파랑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뤽 베송 감독의 '그랑 블루'이다. 잠수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돌고래를 가족으로 여기며 성장한 주인공이 다이버로서 성장하며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 가는 영화이다. 차디찬 물속에서 잠수를 하다 결국 아버지처럼 심해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에게 바다는 아버지가 있는 곳이며, 자신을 키워준 곳이기에 바다는 가장 따듯한 파랑으로 마음을 적신다.

파랑은 어느 영화색채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괴테가 "높은 하늘과 먼 산이 파랗게 보이듯이, 청색의 표면은 우리로부터 멀어져가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 것처럼 사라질 것 같아 더 놓치지 않으려고 간절하게 바라보게 되는 색이어서일까. 파랑은 낯선 경험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색이며 일상적이거나 현실적이기 보다 꿈꾸는 이상을 의미하는 색이 된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파랑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문학소녀 아델이 우연히 파란 눈 파란 머리의 미술학도 엠마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사랑의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성애자의 러브스토리임에도 어느 남녀의 러브스토리와 다를 바 없고, 3시간에 걸친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배우들의 호연 이외에도 내밀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게 하는 클로즈업 앵글과 파랑을 좇아가게 되는 색채 영상미에 있다.

아델의 공간을 꾸미는 것들 그리고 아델의 의상에도 파랑은 지배적이다. 기호색은 꿈의 반영이다. 그래서 아델은 엠마의 파란머리에 정신을 놓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금지된 것이 전제될 때 억제는 힘들고 욕망은 괴력을 발휘한다. 아델의 성정체성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회적 억압이 있기에 더욱 강렬했다. 첫사랑, 금기시 된 사랑, 순수의 시절 본능에 충실했던 사랑이었기에 아델이 꿈꾼 파랑은 그 무엇보다도 뜨거웠다.

영화 속 파랑만큼 아름답게 느낀 색은 감정에 충실한 아델의 얼굴색이다. 수줍어하고 질투하고 사랑을 간구하고 심지어 거짓을 할 때에도 아델의 얼굴색은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데 이 시대 누가 얼굴에 기색을 드러내는 것이 점잖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가면을 쓰고 낯빛을 감추고 상대를 속이는 것보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얼굴색이 필요한 시대다.

색은 마음에 흐르는 감정의 반영이다. 의식적으로 잡는 감정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한 감정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런 내면의 발로이다. 그렇게 가식이 아닌 모습으로 나의 색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또한 영화 속 파랑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차가운 색이 아니라 따뜻한 색이었듯이 맥락 속의 색채를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일반성이 곧 전체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 속 고정관념은 깨뜨려야 한다. 내가 보는 시선이 올바른지, 나는 솔직한 얼굴색을 갖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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