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 중 하나다.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ㆍ독재 미화로 논란을 빚자 보수 언론은 "기존 교과서들이 오히려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며 반격을 가했다. 청소년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교과서는 당대 정치ㆍ사회ㆍ문화계 힘의 지형도를 반영하는 척도로, 이념전쟁의 최전선에 있을 수밖에 없다.
미술 교과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1907년부터 2007년까지, 100년 간의 미술 교과서를 한 자리에 모아 '한국근현대미술교과서'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미술 교과서인 1907년 부터 2007년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 까지, 이제껏 출판된 주요 미술 교과서 210점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찰하는 흥미로운 전시다. 김달진박물관 소장 자료에 국립중앙도서관, 삼성출판박물관, 부산시립미술관의 자료를 보강했다.
시대별 미술 교과서를 보고 있자면 미술시간에 유명 예술가들의 명화를 감상하는 것이 얼마나 최근의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보통학교 미술 교과서로 만들어진 은 사실상 따라 그리기 교본으로 물고기나 빗자루, 가방 같은 일상의 사물과 동물의 스케치를 담았다. 당시 그림이 창작이 아닌 서예와 같은 기능 수련의 영역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제 치하 미술 교과서에는 태극 마크가 빠지고 일장기가 들어가는 등 식민통치의 색깔이 역력해진다. 1930년대 들어 일본의 대륙침략 정책이 노골화하면서 한국의 미술 교과서 역시 병참기지화 전략의 도구로 전락한다. 1937년 발행된 에는 만주국 국기와 군함, 전차, 비행기 등이 대대적으로 실리고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1944년에는 모형 항공기를 조립, 제작하는 공작이 미술 수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일본 전국에서 확산됐던 예술교육운동이 국내에 끼친 영향은 긍정적이라 할만하다. 일본 화가 야마모토 가나에는 모사 중심의 기존 미술 교육을 강력 비판하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도화 교육을 역설했다. 교과서 그림 베끼기에서 벗어나 실물을 관찰해 그리게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해방 이후 창의적 표현을 강조하는 서구의 교육사조를 받아들이는 밑거름이 됐다.
해방 이후 편찬된 미술 교과서에서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인 구본웅과 김경원이 겪은 , 서울대 미대 설립자인 장발의 , 김환기와 박서보가 지은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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