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3대 불가사의' 라는 언론보도가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북한 김정은의 속마음,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는 세상 누구도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농이었다.
이 중 김정은의 생각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무차별 감청 행태가 드러난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총력을 기울여도 간파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지 한 달도 안돼 '악동 스타' 데니스 로드먼과 농구경기, 생일파티를 즐긴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는 신당으로 구체화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설명은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함께 합리적 개혁과 통합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란 설명 정도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그간 "창조경제 알랑가 몰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정부가 조직을 갖추고 실행 의지를 보이면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그 단초를 인정받은 곳은 '지구촌 새 판짜기'(Reshaping of the World)를 주제로 한 다보스포럼이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화두로 '코리아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500여명의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 앞에서 한 개막연설의 주제도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요체를 "국민 개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IT를 접목하고 산업과 문화의 융합을 촉진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경제가 공히 직면한 저성장과 실업, 소득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창조경제'이고, 그 원동력은 '기업가정신'이란 게 이어진 연설의 골자였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선도하는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창조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창조경제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자마자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엔진이라는 기업가정신이 극도로 위축된 국내 상황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기업가정신 주간'을 맞아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인의 82%가 "기업가정신이 위축됐다"고 답했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가 올 초 발표한 기업가정신지수에서 한국은 118개국 중 43위. 경쟁국으로 분류되는 대만, 강소국의 상징인 핀란드, 그리고 오만이나 칠레보다 낮았다. 기업가정신은 자율을 먹고 산다. 그런데 우리 기업에는 자율보다 기업과 기업인을 옥죄는 온갖 제재와 '규제 가시'가 만연해 있다. 지주회사의 증손회사라고 외국기업과의 합자투자도 못하게 하는 비정상적 규제가 정상화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최근 기업인에 대한 수사와 사법처리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최종 판결을 앞둔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재판부가 많은 고민 끝에 결론 내렸겠지만, 핵심 증인에 대한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또 임직원 8만 명의 국내 3위 대기업 총수인 최 회장의 1년여 장기 구속이 투자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파기환송심 직전인 한화 김승연 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KT 이석채 전 회장도 검찰 수사단계에서부터 과잉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기업윤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다보스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외치는 때에, 정작 국내에서는 기업인들을 필요 이상 압박하고 있지 않나 염려스럽다. 기업가정신의 위축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설비투자는 1.5% 줄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경제성장률이 2.8%로 떨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해는 주요 그룹 중 어떤 기업도 채용과 투자 규모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민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분담하고 있다.
집권 2년 차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이 표면화하는 집권 3년 차가 되기 전에 '한국경제의 새판 짜기'(Reshaping of Korea Economy)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그 출발점은 '기업가정신'의 복원에 있다. '한국식 창조경제'의 전도사로 언제까지 강남스타일 싸이만 내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서정원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