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이 24일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시기를 다음달 셋째 주인 17일쯤으로 잡은 것은 여러 변수를 두루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우선 이산상봉은 우리가 북측에 요구한 "말이 아닌 행동"의 첫 조치라는 점에서 적극 호응할 필요성이 생겼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미 "(남북관계 개선은) 무산된 지점, 즉 이산가족 상봉부터 다시 하자"고 밝힌 바 있다. 내달 말 시작되는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북측이 이산상봉을 전격 제안했지만 여전히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선 "한반도 정세를 고의적으로 긴장시키는 행위"(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라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봉 준비 기간(2~3주)과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16일)이 끼어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2월 셋째 주가 상봉 행사를 위한 적기로 꼽힌다. 북한 노동신문은 26일 "김정일 대원수님 탄생 72돌 경축 준비위원회가 여러 나라에서 결성됐다"며 대대적인 생일 준비에 나섰음을 시사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산상봉을 키 리졸브 뒤로 미루면 곧바로 4월 말까지 독수리 연습이 이어져 상봉 행사는 5월에나 가능하다"며 "이 경우 북측이 한미 군사훈련을 빌미로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무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북측 국방위가 공개서한에서 이산상봉 시기를 "남측이 편리한대로 정하라"고 백지 위임한 만큼 성사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방위 서한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명'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북한 당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일단 27일 북측에 전통문을 보내 상봉 규모와 장소, 시기 등을 논의할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개최를 제안한 뒤 실무협의에서 구체적인 상봉 일정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측은 우리 측이 제시한 상봉 날짜를 거부할 변수는 남아 있다. 북한의 전방위적 평화 공세는 다분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시키려는 목적이 강해 남측이 훈련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을 경우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언론 매체와 국제 여론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중대 제안을 선전해 온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판단하고 대화 무산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측이 실무협의 과정에서 금강산관광 재개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금강산관광 문제를 제기하면 응하기는 하겠으나 세부 논의는 이산상봉 행사가 끝난 뒤 이어가자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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