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수유동의 한 다세대 주택. 박태령(10)군이 이를 악물고 재활훈련용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5분 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태령이가 자전거에서 내려오자 아버지 박종운(47)씨와 어머니 김경자(40)씨는 "개학하면 넘어지지 말고 친구들이랑 잘 뛰어 놀아야 한다"며 둥글게 휜 태령이의 두 다리를 정성스럽게 주물렀다.
태령이는 여덟 살이 되던 2012년부터 몸에 이상이 생겼다. 쉽게 넘어졌고, 한번 넘어지면 두 팔로 땅을 짚은 채 2, 3분 동안 온 힘을 써야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주저 앉기도 했고, 계단 하나를 오르는 데도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동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 해 여름,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태령이는 근이영양증(근육퇴행위축) 진단을 받았다. 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못해 온몸의 근육조직이 서서히 굳어 운동기능이 저하되고, 심할 경우 폐와 심장 근육까지 움직이지 못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현재로선 근육 약화를 늦추는 스테로이드 약물 투여 외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그마저도 후유증이 심해 약만 먹으면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붓는다. 때문에 부부는 틈만 나면 태령이의 온몸을 주무른다. 팔 근육까지 약해진 태령이의 화장실 뒤처리도 부부의 몫이다. 약과 물리치료로 지금은 느릿하게나마 두 발로 걷지만 몸이 더 굳으면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할 지 모른다.
하루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태령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 상태도 온전치 않다. 아버지 박씨는 2010년 12월 위암 2기 판정을 받은 후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집에서 요양 중이다. 2010년 초부터 덕수궁 상황실에서 기간제 관리직으로 일하며 무기계약직 전환을 학수고대했지만 박씨는 건강과 함께 직장도 잃었다. 독한 항암치료에 2년 새 체중이 10㎏이나 줄었고, 치아도 흔들려 음식을 잘 씹지 못한다.
어머니 김씨는 태령이가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곤란이 자주 찾아왔다. 심장 근육이 점점 두꺼워져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비후성 심근증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동네 중학교 급식실 계약직 조리원으로 일했지만 병 때문에 지난해 2월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불규칙한 맥박 때문에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 식구 모두 간호를 받아야 할 중병 환자이지만 부부는 오로지 태령이 걱정이다. 박씨는 "부모가 아픈 게 어린 아들한테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태령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 개발이 부부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한편으로는 값비싼 약이 나올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지난 3년간 세 식구 의료비로 친척들에게 진 빚이 2,000만원이 넘는다. 부부에겐 기초생활 생계급여로 지원되는 월 100만원 정도가 유일한 수입이다.
그러나 부부는 태령이 때문에 힘을 얻는다. "남은 인생에 찾아올 불행들이 한꺼번에 왔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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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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