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결혼 4개월 만에 생이별한 아내가 낳은 아들이 있시요. 고조, 죽기 전엔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아파트. 강능환(93) 할아버지는 거실 유리문에 붙은 고향(황해도 신천군 구월산) 사진을 보며 북한 사투리가 옅게 남은 말투로 말했다.
강 할아버지는 1951년 1.4 후퇴 때 가족들과 헤어졌다. 부모님은 당시 스물다섯 살이던 강 할아버지에게 "중국 인민군이 젊은 남자들을 끌고 간다니 피신해 있으라"고 했다. "사흘만 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60년이 넘도록 지켜지지 못했다.
가족의 생사를 수소문하던 강 할아버지는 지난해 1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가족은 모두 사망했지만 아들이 살아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강 할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를 닮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비 없는 아들이라고 고생은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며 "아들을 꼭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에 우리 정부가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향민들도 들뜬 목소리로 기대감을 표했다.
귀가 좋지 않아 통화가 어려운 실향민 이명호(82) 할아버지 대신 전화를 받은 부인 한부덕(78) 할머니는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가 울다 웃다 반복하다 친척들에게 전화해 소식을 전하더라"면서 "무엇보다 기쁜 설 선물이 됐다"고 말했다. 평양이 고향인 이경주(80) 할아버지는 "유일한 피붙이인 조카라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허리를 다쳐 이번 상봉에 참가하지 못하는 김순연(80) 할머니는 "실향민들의 나이가 많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니겠느냐"며 "다른 사람들이라도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반응도 적지 않다. 열두 살 때 공부를 위해 함경남도 북청에 가족들을 두고 서울에 왔다는 전호연(82) 할아버지는 "지난해에도 상봉 직전 무산됐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만큼 신중히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실향민도 "아직 날짜가 잡힌 것도 아닌데 설레발 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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