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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잃은 건 돈 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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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잃은 건 돈 뿐만이 아니었다

입력
2014.01.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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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청소일 등을 하며 아끼고 아껴 1억5,000여만원을 모았던 황금성(76)씨의 황혼은 전북 전주 시내 한 요양병원에서 저물고 있다. 평생 관광이라고는 가 본 적이 없는 그에게 "적금 만기가 되면 제주도 여행이나 가자"던 아내는 전동침대 없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한다. 전 재산을 넣은 전일저축은행이 2009년 12월 31일 영업정지를 당한 직후 아내 이모(73)씨는 충격으로 쓰러져 4년째 병원에 누워 있다.

지난 17일 병실에서 만난 황씨는 깊고 긴 한숨을 뱉었다. "안사람이 이렇게 5년을 살지 10년을 살지 모르죠. 수백억씩 가로채고 은행 망해 먹은 사람들은 감옥에서 몇 년만 살고 나온다는데, 이대로 끝나면 인생이 너무도 허망하지 않습니까." 저혈압 쇼크로 반신불수가 된 채 언어장애까지 겹친 아내 이씨는 곁에서 목놓아 울기만 했다.

전일저축은행이 문을 닫은 지 4년여가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던 전일저축은행 사태는 2011년 불거진 대규모 저축은행 비리 사태의 전조였다. 전일저축은행 피해자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돈을 날린 이들 대다수가 행상과 경비일 등을 하던 저소득층 서민들로, 이중 20여명은 그새 홧병과 고혈압 등으로 세상을 떴다.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금융당국의 무능함이 다시 도마에 오른 요즘 금융감독 부실이 서민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황씨는 10여년 전부터 전주 시내 아파트에서 청소일을 하며 받은 100만원 가량의 월급을 전일저축은행에 모두 넣었다. 생활비는 아내와 함께 폐지나 재활용품을 주워 판 돈 30여만원으로 충당했다. 고향 완주에서 빚만 늘어가는 소작농 생활을 접고 1970년 전주로 올라 와 채소 행상부터 붕어빵 장사, 섬유공장 노동, 공사판 막노동 등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한 부부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을 위해 모은 돈이기도 했다. 충격은 그만큼 컸다. 황씨는 "전북 지역 6개 영업점에서 모두 1조 3,000억원 규모의 예금을 보유하던 은행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두 사람 계좌로 나눠 예금한 덕에 5,000만원 이상 예금자에 대해 예금보험공사가 지급한 5,000만원씩의 보험금을 각각 받았고 추가 환급도 일부 받아 손해액은 3,400만원 남짓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씨의 치료비와 생활비 등으로 돌려 받은 돈의 대부분을 썼고, 지금은 자식들이 매달 보내주는 몇 십 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일저축은행 영업정지 및 파산으로 피해를 본 5,000만원 이상 예금자는 모두 6,050명으로 총 피해액은 5,671억원에 달한다.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예보가 전일저축은행의 채권 등을 처분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준 돈은 1,815억원 가량으로 전체 피해액의 32%에 불과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지만, 전일저축은행 대주주였던 은인표(57ㆍ수감 중)씨는 변호사 비용으로 40억원 가량을 쓰고 수천만원을 주고 교도관을 매수하는 등 숨겨놓은 재산이 상당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전주=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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