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신흥국들이 잇달아 통화위기를 맞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지난 23일 하루 무려 13.2% 폭락한 데 이어, 주말인 24일에도 1.5% 속락해 달러당 8페소에 마감됐다. 페소화가 달러 당 8페소를 넘긴 건 2002년 국가부도(디폴트) 이래 처음이다. 터키 리라화도 같은 기간 3.5% 하락해 달러 당 2.34리라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마치 미국의 연쇄 금리인상에 따른 국제자본 이탈로 촉발된 1995년 초 멕시코 페소화 위기가 재현된 듯한 분위기다.
위기 발생 메커니즘도 당시와 유사하다. 우선 미국 테이퍼링으로 달러가치가 상승세를 타고 미국금리도 오르게 되자, '고위험 고수익'을 노려 신흥국에 투입됐던 국제 투자자금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역류할 조건이 형성됐다. 이 와중에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인플레이션율이 25%까지 치솟은 아르헨티나나 대규모 기간산업(SOC) 투자로 외채를 과다하게 짊어진 터키 등의 약점이 부각되면서 먼저 급격한 자본이탈이 발생하고 통화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투자자금의 선진국 회귀 과정에서 일어나는 신흥국 통화위기는 전염성이 아주 높다. 과거 멕시코 페소화 위기 때 이미 '데킬라 효과'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을 만큼, 위기는 비슷한 경제적 약점이 있는 신흥국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터키나 아르헨티나 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일단 국제 투자자금의 신흥국 이탈 회오리에 말려들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직은 수출이 견고하고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통화위기 과정에선 위기를 적극적으로 증폭시켜 이득을 얻으려는 투기세력이 준동해 얼마든지 위기를 조장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어제 긴급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근 국제 통화위기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만큼, 보다 굳건한 방어체계를 다지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