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부르던 민요의 일부분이다. 이 노래에는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다가 풍랑 때문에 목숨을 잃은 남편과 아들 대신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해녀 삶의 애환이 녹아있다. 한편 이어도를 향한 동경심도 숨어있다.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의 전설 속 이상향이었다. 바다로 나간 뱃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 이청준은 자신의 소설 에서 "긴긴 세월 섬은 늘 거기 있어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왜 섬을 본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을까.
이어도는 이름에 비록 섬 도(島)자가 들어있지만 섬이 아니고 수중 암초다. 가장 높은 곳도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4.6m 아래 물에 잠겨있다. 그러니 풍랑이 최소한 10m는 되어야 비로소 모습이 드러난다. 이렇게 험난한 바다에서 일엽편주에 몸을 의지한 어부가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설치되면서 이어도는 전설 속 환상의 섬에서 과학의 섬으로 탈바꿈했다. 정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해양과학기지 건설을 계획했으며, 한국해양과학기술원(당시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설계했고, 2001년 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기지가 완공되었다. 2007년부터는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해양과학기지는 바다 위로 36m 솟아있다. 수심 40m 기반암에 세워졌으니 전체 높이는 76m이고, 25층 아파트보다 높은 셈이다. 지반 강화를 위해 길이 60m 파일 8개를 해저암반에 박기도 했다. 필자도 이어도해양과학기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기지에 발을 디디며, 과학자답지 않게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전설 속의 이어도를 생각하기도 했다.
최근 이어도가 모든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중국이 지난해 11월 23일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곧이어 12월 8일 이어도가 포함된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일본은 일찍이 1969년 이어도를 자국 방공식별구역에 포함했다. 이제 이어도 상공은 한ㆍ중ㆍ일 3개국 방공식별구역 안에 중첩되었다.
이어도는 파랑도 또는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고도 불리며, 중국에서는 쑤엔자오(蘇岩礁)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소코트라라는 이름은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 호가 처음 발견하여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어도는 마라도 남서쪽으로 149km, 중국의 유인도인 위산다오(余山島)에서 287km 그리고 무인도인 퉁다오(童島)에서는 247km, 일본의 도리시마(鳥島)에서 276km 떨어져 있다. 거리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에 가장 가깝다. 현재 우리나라가 관리하고 있지만, 주변국의 견제가 끊이지 않아 이어도 주변에 긴장의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주변 국가에서 이어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어도의 지정학적, 경제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어도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이다. 이어도 주변 해역으로 우리나라 수출ㆍ입 물동량의 90% 이상이 지나간다. 이어도해양과학기지는 태풍이 우리나라로 접근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기지에는 첨단 과학 장비가 설치되어 있어 해양과 기상, 환경자료를 실시간으로 얻고 있다. 이 자료로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여 미리 대피하면 인명이나 금전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인근 해역은 갈치, 고등어, 조기, 민어, 오징어 등이 잡히는 황금어장이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에너지 창고이다. 유사시 해난 구조 기지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속에 숨어있던 전설의 섬 이어도는 해양과학기지 건설로 물 밖으로 나오며 과학의 섬으로 탈바꿈하였고, 이제 이어도 상공에서 국제적으로 이해관계가 뒤얽히면서 카오스의 섬으로 진화 중이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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