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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중국 13억의 춘제 대이동… "귀성 대신에…" 장기 여행객도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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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중국 13억의 춘제 대이동… "귀성 대신에…" 장기 여행객도 늘어

입력
2014.01.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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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전 11시 중국 베이징역 광장. 냉장고만한 짐을 등에 진 것도 모자라 여행용 가방까지 끌고 가는 남자, 장거리 기차 여행을 위해 빵과 컵라면, 만두, 과일, 맥주 등을 한 보따리 챙긴 여자, 고향집까지 가져 갈 평판TV와 각종 선물 상자들을 들고 인파 사이에서 길을 뚫는 아빠, 행여라도 잃어 버릴까봐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는 엄마의 귀경 풍경들이 광장을 메웠다.

13억 6,000만 중국인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중국의 춘제(春節ㆍ설) 귀성이다. 중국에서 고향으로 가는 명절 긴 여정의 첫 관문은 역 앞 광장에서 줄을 서 신분증 검사를 받는 것이다. 열차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에선 기차표와 신분증을 함께 제시해야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후 열차별로 나뉘어진 대합실 안에서 기다리다 출발 15분 전 개표구에서 다시 표 검사를 마쳐야만 승강장으로 가 기차를 탈 수 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까지 16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7살 아이는 벌써 지쳤는지 심통이 난 표정이다. 장리(張麗ㆍ35)씨는 "춘제엔 아무리 멀어도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중국인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올해 공식적인 춘제 연휴는 31일부터 2월6일까지 일주일간. 그러나 실질적인 귀경길은 이미 이달 초 시작됐다. 도시에선 미리 고향을 간 직원들 때문에 벌써 일손이 달린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16일부터 2월24일까지 이어지는 40일의 춘윈(春運) 특별운송기간 동안 여객 운송량이 무려 36억2,3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 비해 연인원 2억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중 철도 여객수는 2억5,800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표 한 장 구하기 힘들기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암표상을 의미하는 '황뉴당'(黃牛黨ㆍ이전에 역전 인부들의 옷이 노란색이었던 데서 유래)의 횡포는 이어졌다. 이들은 대규모로 아르바이트생을 동원, 전화를 하거나 줄을 서 표를 산 뒤 이를 비싼 값에 되팔고 있었다.

최근에는 열차보다 비행기나 승용차를 이용한 귀성이 크게 늘고 있다. 일부 비행기 표 값은 평상시의 8배까지 오르기도 한다. 갈수록 도로 정체가 심해지지만 춘제 연휴 기간에는 고속도로 요금까지 면제되고 있어 인기다. 중국식 카풀인 핀처(拼車)도 새 풍속도다. 표를 미리 예매하지 못했거나 형편이 안 되는 경우 오토바이를 타고 귀성하는 중국인도 적지 않다. 특히 농민공이 많은 광둥(廣東)성에선 이런 인파가 40만 명이나 될 것으로 추정된다. 수천 ㎞나 떨어진 고향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간 사연들도 소개되곤 한다.

귀경길 전쟁을 치르며 산 넘고 물 건너 고향에 도착하면 섣달 그믐 밤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앉아 식사(녠예판ㆍ年夜飯)를 하면서 국영 CCTV에서 방영하는 설 특집 대형 연예 오락 프로그램인 춘완(春晩ㆍ春節聯歡晩會의 준말)을 보는 것이 전형적인 현대 중국인의 춘제 풍경이다. 춘완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고, 방송 시간이 가장 길며, 출연자수가 가장 많은 종합 예술 프로그램으로 기록돼 있다. 13억 인구의 지난해 시청률이 31.2%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춘완에 한 번 나왔다가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사연도 수두룩하다. 올해는 조선족 록가수 최건이 부를 노래를 바꾸라는 압력 때문에 출연을 접었지만 대신 한류스타 이민호가 출연한다.

섣달 그믐 밤 12시. 춘제의 0시에 해당하는 이 시각에는 중국 전역에서 폭죽이 터진다.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폭죽과 불꽃놀이는 밤새도록 계속되기 때문에 아예 깊은 잠을 자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중국인이 명절에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폭죽(爆竹)의 발음인 '바오주'와 복을 알린다는 뜻의 '바오주'(報祝)가 같기 때문이다. 소리로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도 있다.

춘제의 풍경은 시대에 따라 점차 변하고 있다. 최근 네티즌 611명이 참여한 양성만보(羊城晩報)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7%가 귀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호소했다. 신경보(新京報)는 10쌍의 부부 중 3쌍은 춘제에 누구의 고향을 갈 것인 지를 놓고 다툰다고 전했다. 대도시에선 집 대신 유명 식당에서 녠예판을 먹는 일도 많고, 이 때문에 예약을 하려면 웃돈까지 줘야 하는 실정이다. 장기간의 춘제 연휴를 이용해 귀성 대신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중국의 제주도에 해당하는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시의 고급 호텔 숙박비는 춘제엔 평상시의 10배까지 오르기도 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새 지도부는 앞으로도 도시화를 더욱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의 춘제 귀성 인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며, 귀성전쟁이 더 심해질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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