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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월 27일] 막말정치, 막돼먹은 정치

입력
2014.01.2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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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증인석에 설 때마다 설명 자료집을 꽝 덮고, 사임하겠다고 하고 싶은 유혹을 자주 느꼈다. '장관이기 이전에 나도 어엿한 국민의 한 사람이요. 그런 식으로 나한테 말하는 개XX는 전 세계에 아무도 없소. 그만둘 테니 다른 사람을 찾으시오.' 이는 내가 (국회에 설 때마다) 내내 가졌던 생각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불만의 대부분은 적대적이고, 심문을 하는 듯한 여야 의원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민재판 같은 분위기로 TV카메라가 있을 때는 더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대한민국 정부관료는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된 회고록 에서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한 얘기다.

그렇지만 국회에 불려 나가 증인석에 앉은 우리 장관이나 관료들도 열 두 번은 저런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호통하면 또 우리 국회가 아니든가. 국정감사나 청문회, 상임위를 보면 인민재판이 아니라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의 사또재판이 재연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말 봐주기 어려울 때 나올 수도 있지만 대개 사안을 과장하거나,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논리가 비약할 때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 의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옛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물증으로 장관 후보자(오래된 일이라 이름을 거론하지 않겠지만)의 윤리적 문제 등 숱한 잡티를 집어내면서도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던 일을 감탄하며 본 기억이 있다.

결국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윽박을 해서 될 일도 아니고, 과장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팩트의 문제고, 의원 개개인의 성실, 노력과 연관된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 의원들은 오로지 자극적인 언사로 승부를 걸려는 경향이 너무나 농후하다. 사실관계에 목매야 할 검사 출신 의원조차 과장과 인격 살인성 막말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니 이를 부추기는 못된 문화가 있다 해도 감히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의원들의 거친 언행은 게이츠 장관이 지적한 대로 다분히 언론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그 과정에 보이는 인격 침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 수모를 당하고 집안에 욕을 보이느니 차라리 장관을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고위 관료도 봤다.

여야 대표가 지난 신년기자회견에서 다같이 막말을 추방하겠다고 했다. 국회 선진화법 덕분인지 지난해 예산국회에서 난장판 정치가 자취를 감췄듯이 발전적 방향이기는 하나 실효성이 담보돼야 하고, 막된 정치도 당연히 되돌아봐야 한다.

의원들의 천박한 언행은 대개 여야의 대결적 자세 내지는 뿌리깊은 '갑'문화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공석에서 '갑질 봉변'을 당한 한 고위관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모임 뒤 그 의원에게 항의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런 게 정치혐오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미 의회 분위기에 대해 잘 아는 바는 없지만 2007년 북핵 2ㆍ13 합의 직후 열린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 6자회담 대표의 의회 청문회 스크립트를 봤을 때 느낌이 달랐다. 우리 이상으로 감정적 대립이 심한 민주ㆍ공화당 의원들이 힐 대표에게 "국가를 위한 당신의 헌신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당신의 노력을 치하한다"는 말로 자락을 깐 다음 평가할 건 평가하고, 비판할 건 비판했다. 이러한 치사(致辭)가 의례적이라 할지라도, 신선해 보였다. 우리 관료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위치에 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혼만 낸다고 해서 의원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게이츠 장관의 이야기에서 느껴야 할 교훈은 당하는 당사자가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우리 의원들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배려의 문제다.

정진황 정치부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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