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공연계가 두 명의 ‘팜므파탈’로 후끈하다. 지난해 12월부터 막을 올린 뮤지컬 의 여주인공 차지연과 바다다. 차지연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여주인공 카르멘에 딱 맞는 배우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가 부르는 노래와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목석 같은 남자라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카르멘(차지연)이 빨간 치마를 흔들며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을 보노라면 경박함은커녕 섹시함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무대가 연출된다.
차지연은 그 동안 한국적 한이 서린 연기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창작뮤지컬 의 송화와 의 카르멘이 모두 한 사람의 얼굴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차지연도 처음 맡은 카르멘을 통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남자를 유혹하는, 진정한 팜므파탈을 경험하고 있다. 차지연은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를 해보니 재미있다. 섹시한 모습은 나 혼자만 아는데 (웃음) 대중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떨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차지연의 목소리는 한층 더 퇴폐미와 섹시미를 입은 카르멘으로 만들어준다. 차지연이 말하는 묵직하고 무게감 있는 유혹이다. 집시 여인으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여러 남자를 만나 풍파를 겪은 세월이 묻은 연륜도 드러난다.
차지연에 따르면 카르멘을 프랑스 배우 모니카 벨루치처럼 표현하고 있다. 여가수를 두고 보자면 차지연의 카르멘은 걸그룹의 노래처럼 통통 튀는 경쾌한 섹시미가 아니라 백지영의 무거운 발라드에 가깝다.
실제 차지연이 그렇지 않다는 데서 이 뮤지컬을 보는 재미가 있다. 카르멘이 극중 사내들이나 비극적 운명의 상대 호세를 만날 때 거침없는 점과 달리 무척 소극적이다. 차지연은 사실 낯도 많이 가리고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굳이 카르멘과 비슷한 점을 찾자면 마음에 드는 이상형을 만났을 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직진한다고 말했다.
차지연은 회를 거듭할수록 카르멘에게 푹 빠져들고 있다. 매 공연마다 조금씩 달리 연기하는 잔재미도 있다. 두 달 여 공연 동안 매회 익숙하지 않은 표현으로 연기하는 배우나 보는 관객 모두가 만족하는 작품이 되는 셈이다.
차지연은 “공연마다 감정 상태가 다르다. 공연이 매회 한 감정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에는 류정한씨의 셔츠를 배꼽까지 풀어봤다. 본인이 원하지 않은 상체 노출에 굉장히 당황하더라. 공연 후에 ‘왜 그렇게 많이 벗겼냐’는 타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차지연은 호세 역의 류정한과 신성록을 만날 때 부르는 노래의 버전을 따로 뒀다. 배우가 가진 느낌이 다르기에 노래 역시 상대에 따라 다른 감정을 담아 부른다. 류정한은 남자로서 이끄는 매력이 강해 주로 맡기는 편이다. 반면 신성록은 망가뜨리고 싶은 감정이 든다. 맹물 같은 순수한 모습에 설탕물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려 휘저어 보고 싶다.
뮤지컬은 두 시간 남짓 연기와 노래, 춤까지 소화해야 하는 터라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일주일에 다섯에서 여섯 차례 무대에 오른 뒤에는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지연은 그런 부담에도 개의치 않고 피날레까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힘들지 않냐’는 대답에 그는 손사래 치며 “신나게 춤추고 노래해서 즐겁다”고 했다. 등과 비교해 동작은 커도 감정 소모가 덜한 편이라는 설명이다. 감정을 최고치로 끌어 올려 매 장면마다 담아 내야 하는 두 작품들보다 은 배우로나 여자로 작품을 만나기 때문이다.
차지연은 이 끝난 뒤 곧바로 세 번째 에 합류한다. 초연 때부터 슬픈 운명의 송화를 연기해 오고 있다. 차지연은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부담이 크다. 는 그냥 집 같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미친 듯이 웃어도 다 안아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초연 예고 중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에 출연하는 일이다. 최근 오디션에도 참여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거리에서 노래하는 더블린의 가난한 남자와 그 노래에 담긴 사연에 공감하는 체코 이민자 여인의 사랑을 담았다. 2012년 토니상 작품상과 연출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차지연은 “뉴욕에서 직접 관람하며 감동한 뒤 국내에 올라오면 꼭 하고 싶은 작품이 됐다. 원래 건반을 못 다루는데 하루에 피아노를 천 번씩 쳤다. 전작 때 밥도 안 먹고 건반 연습을 했고, 피아노가 없을 때는 건반을 그려서 연습했다. 이런 도전은 나도 좋다. 배우로 사는 매력 중 하나이지 않나”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현아기자
한국스포츠 이현아기자 lalala@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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