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웹 소설이 10년 넘게 글쓰기를 포기했던 나를 다시 글 쓸 수 있게 만들어 준거죠. 아이 키우며 살림하며 짬을 내 글을 쓰고 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곧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합니다."
24일 박지영(40)씨는 "오늘을 잊을 수 없다"며 감개무량했다. 그는 이날 지난해 네이버에 연재한 자신의 첫 웹 소설을 종이책으로 엮은 를 처음 만났다.
사실 박씨는 10여 년 전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영(young)'이라는 필명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던 작가 였다. "당시 유니텔 문단이 유명했었다"는 그는 "1999년 유니텔 문단에 첫 여성 멤버이자 제4의 멤버로 활약했다"고 말했다. 다음 카페, 네티앙의 '문단 게시판'에 '영'의 글이 올라오면 조회수가 많을 때는 10만을 찍었다고 한다. 박씨는 "어른들 소설뿐이었고 10대 얘기는 없었는데 '학원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10대가 주인공인 로맨스를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씨의 글에 푹 빠진 수 많은 10대들이 자신의 고민을 담은 얘기들을 답장 '쪽지'에 남겼다.
특히 그의 공포추리물은 큰 인기를 끌었는데, 2001년 6월 을 시작으로 3권짜리 시리즈를 잇따라 책으로 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한 문학 공모전에서 단편소설 부문에 입선했다.
작가로서 승승장구하던 바로 그 때. 그는 돌연 글쓰기를 접었다. 박씨는 "저작권 등 글쓴이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출판사와 대형 서점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박씨는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다 결혼과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아갔다.
그러던 지난해 1월 20일 박씨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려 11년 만으로 네이버의 웹 소설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네이버는 당시 장르소설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정식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챌린지 리그' 코너를 마련했고, 챌린지 리그에 올라온 글 중 네티즌 반응과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뽑힌 작가와 정식 계약을 맺고 글 연재 기회를 줬다.
박씨는 아이가 잠든 시간이나 늦은 밤에 부지런히 글을 썼다. 하지만 왕년에 글 좀 썼다는 그였지만 몇 차례 도전 때 마다 번번이 낙방했다. 박씨는 너무 오랜만에 써서 그랬나 싶었지만, 네이버 관계자는 '독자들이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웹 소설을 많이 읽는데 박씨의 글은 지문이 많고 묘사 내용이 길다 보니 글 전개가 느려 읽기에 부담스럽다'고 조언했다.
아차 싶었다. 박씨는 10년이라는 시간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뒤늦게 온라인의 다른 글들을 살폈다. 가장 큰 차이는 글의 길이. 박씨는 "저는 글 하나를 올려도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10페이지 이상 올렸는데 다른 글은 심지어 1~2페이지짜리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PC통신 시절에는 한참 고민하면서 미리 글을 써놓고 식구들이 잠든 늦은 밤에 집 전화 선으로 접속해 잠깐 동안 글을 올려야 했다"며 "지금은 스마트폰, PC랑 늘 접속이 돼 있어 빨리 그리고 짧게 글을 써서 올린다"고 비교했다. 내용도 PC통신 시절 공포추리물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로맨스가 주류였다. 게다가 워낙 많은 이들이 글을 올리는 온라인 글쓰기는 색다른 소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렵다.
포기할까 망설이던 박씨를 다잡게 한 것은 독자들의 응원. 네이버에 올린 를 읽은 이들이 뒤늦게 '기존 웹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 '재미도 있고 깊이가 있다'며 글을 계속 써줬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박씨는 다시 글 쓰기 시작했고, 전자책 보급 사업과 전자 도서관 구축 사업을 하는 북큐브네트웍스가 다른 전자책 출판사들과 뭉쳐 디지털 작가 양성을 목표로 총 상금 1억원을 내걸고 실시한 'e작가상 공모전'에 와 두 편을 냈다. 그리고 그의 두 작품은 지난해 연말 시상식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휩쓸었다. 박씨는 올해 네이버에 올린 다른 글 2편과, 공모전 당선작 2편까지 잇따라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출간 예정이다.
네이버에만 하루 평균 300개의 웹 소설이 올라올 만큼 온라인 글쓰기의 인기와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박씨는 이제 막 온라인 글쓰기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해 "좀 더 편하게 글을 써서 올리고 그 글에 대한 독자들 반응을 통해 곧바로 글을 수정할 수 있는 점은 큰 장점"이라면서도 "그러나 글의 소재와 문체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 수 많은 글과 작가들 사이에서 개성이라는 경쟁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로맨스라고 해서 사랑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우정, 가족애, 생명의 소중함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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