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 제의하며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불과 보름 전인 9일에는 우리측의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대해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그러면서 설까지 준비기간이 촉박하고, 내달 한미 군사연습이 시작되기 때문에 분위기상 맞지 않는다는 두 가지 이유를 댔다.
그 사이 별반 상황이 바뀐 것이 없는데도 북한은 이번에는 정반대의 제안을 했다.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북한의 다양한 노림수가 엿보인다. 우선 이산가족 상봉은 우리측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앞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진정성 있는 조치'의 핵심이다. 북한이 지난 16일 '중대제안'을 거론하며 남측을 향해 대화공세를 펴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 북측의 행동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신뢰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이 남측과의 관계개선에 신경 쓰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3년 차를 맞아 그간 공언해 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추진할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 발표 이후 김정은이 경제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지만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외부지원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남한과의 물꼬를 트지 않는 한 김정은의 방중이나 중국의 경제지원, 미국과의 회담 등 북한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인도주의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하는 모습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과시하고 부각시키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지난 16일 제안한 상호비방 중지,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 등 중대제안을 유엔안보리에 공식문건으로 배포한 것도 진정성 과시 의도로 볼 수 있다.
반면 이산가족 상봉을 요구해 온 우리 정부를 향해 예상보다 신속하게 공을 넘기면서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압박의 성격도 적지 않다. 자신들이 성의를 보였으니 남측도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라는 압박이다. 박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김정은 체제 이후를 상정해 북한을 몰아세우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궁지로 몰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2월 말부터 시작되는 한미연합 군사연습 때문이다. 한달 정도의 준비기간과 겨울철 추위를 감안하면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2월 말이나 3월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키 리졸브 연습이 한창이거나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는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 연습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훈련을 중단하라는 식으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지난해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과정에서 그랬듯 북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상봉행사를 연계하는 패키지 전략을 고수할 경우 남북간 신경전만 벌이다 끝날 수도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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