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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학대에 스러져간 서현이, 죽음 막을 기회 외면했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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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학대에 스러져간 서현이, 죽음 막을 기회 외면했던 사회

입력
2014.01.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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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4일 울산 울주군 집에서 계모 박모(41)씨에게 맞아 숨진 서현이(당시 8세). 학대는 3년 반 동안 이어졌고 그 사이 2개의 아동보호기관 등이 22번이나 개입시도를 했다. 하지만 학대의 심각성을 간과한 전문가, 가해부모 상담을 강제하지 못하는 제도, 기관간 불통과 비협조는 수많은 기회를 잃게 했다. 서현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지난해 11월부터 진상조사를 벌인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ㆍ민주당 의원)는 24일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해 제도적 허점을 살펴보고 "가정 내 폭력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가 8살 아이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1. 재학대 위험성 파악했다면

서현이가 경북 포항시에 살던 2010년 3월. 어린이집 교사는 서현이를 씻기다가 다리에 난 상처와 온 몸의 멍자국을 발견했다. 같은 해 10월 왼쪽 머리에 상처를 봤다. 서현이는 "엄마한테 죽도(竹刀)로 맞았다"고 털어놓았다. 서현이가 학대사실을 처음 알린 때였다. 이듬해 3, 4월 교사는 서현이 오른쪽 발목과 오른쪽 팔뚝에서 피멍을, 5월엔 발바닥 배 등에 시퍼런 멍 자국을 발견했다. 교사는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학대에 시달린 지 1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시점이었다.

기관 상담원 2명이 교사와 서현이, 계모 박씨를 면담했다. 이들은 아동학대로 결론 내리고도 박씨를 격리시키는 대신 '원 가정 보호 및 지속 관찰'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위원회가 지적한 첫번째 문제는 바로 재학대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상담자가 지속적 학대를 기록했음에도 상급자가 적극 대처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2. 친모를 찾을 수 있었다면

친모와 연락이 됐다면 서현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동보호기관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할 권한이 아예 없다. "경찰과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위원회는 밝혔다. 아동기관은 비협조적인 경찰의 태도에 너무 익숙해 아예 협조를 구하지도 않았었다.

#3. 개입을 강제할 수 있었다면

2011년 7월 이들이 인천으로 이사 가자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인천의 같은 기관으로 학대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박씨는 상담을 거부했고 이 때부터 기관은 손을 뗐다. 서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세번째 기회는 학대부모에게 개입을 강제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사라졌다.

#4. 상담원들이 더 집중했다면

게다가 기관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인천 기관은 포항 기관에서 이관한 서현이 사례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상담원들이 만나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관 상담원은 1인당 평균 50건(적정건수 12건)의 사례를 관리하는 등 한 사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5. 신고의무자가 역할 했다면

이들 가족은 2012년 3월 울산 울주군으로 집을 옮겼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인 2012년 5월 서현이는 대퇴부 골절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 그 해 10월 양쪽 손과 발을 데는 2도 화상을 입어 12일간 결석했다. 박씨는 "서현이가 샤워를 하다 화상을 입었다"고 둘러댔다. 이상한 변명이지만 교사, 의료인 모두 아동학대를 알아채지 못했다. '학대 신고의무자'였던 이들 중 신고의무자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학원 선생님은 자신이 신고 의무자인지도 몰랐다. 서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는 이렇게 물거품이 됐다.

울산시는 24일 아동학대 신고의무 위반에 대해 조사한 8명 모두에게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울산시, 복지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울산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이 모두 책임을 전가하는 양상을 보였다"며 "법은 지자체장을 과태료 부과 주체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신고의무 불이행을 입증할 방법과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아무 효력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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