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들 "지자체 인식 부족"지역색 살리는 공간 기획해도 "그냥 평범한 조각공원으로…" 공무원들 요구에 결국 후퇴● 단기 실적주의 빠져해외선 최대 10년 주기 작업… 한국선 모든 과정 1년 내 끝내 주민과 소통할 시간도 없어● 주부 작가들 뭉친 '금천 미세스'"밥 먹자" 주민들 불러 모아 작품 설명하고 다양한 미술 놀이… 일상 속 예술적 쉼터로 자리매김● 공공미술 앞장선 안양시2005년 도시 전역에 작품 설치… 언론 관심으로 홍보 역할 톡톡공공미술 전문 도슨트 육성도● '작품 철거' 새로운 실험일일 조각부터 100년 작품까지… 美·유럽은 설치 때부터 수명 부여변화에 대응하며 공공성 강화
지난해 12월 인천 중구 송월동 주택가에서는 벽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중구청이 오즈의 마법사, 피노키오, 헨젤과 그레텔 등 세계 명작동화 주인공 그림으로 동화마을을 꾸며 골목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벌인 일이었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동네를 둘러싸고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있는가 하면 칠이 벗겨져 흉물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러나 미술계 종사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또 벽화냐"는 거였다.
벽화가 전국적으로 유행한 것은 2006년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이 벽화로 명성을 얻으면서다. 이후 서울 삼청동 벽화골목, 부산 감천동 벽화마을 등 지금까지 민∙관에 의해 조성된 벽화마을만 100여 곳이 넘는다. 전문가들이 문제 삼는 것은 벽화 자체가 아니라 예술의 수많은 장르 중 벽화 하나에 심각하게 편중돼 있는 현실이다. 문화에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빈곤을 해소하고 마을 환경을 개선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힘이 예술에 있다고 믿는다면 어째서 그 수단이 벽화 하나뿐일까. 전국 방방곡곡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벽화마을은 관 주도 문화사업의 한계와 고질적 전시 행정, 대중적 무관심과 문화적 소양이 한데 얽혀 만들어낸 한국 공공미술사의 일면이다.
조각ㆍ벽화 공화국의 속사정
각지의 벽화마을은 대부분 관에서 주도하는 공공미술 사업의 산물이다. '대중을 위한 미술'을 뜻하는 공공미술이란 단어는 1967년 영국 미술행정가 존 월렛이 처음 쓴 말이다. 그는 저서 에서 "선택된 소수만이 미술을 즐기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며 공공미술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후 공공미술은 미술의 민주화,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공공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해방 이후 공원이나 광장에 세워진 기념비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이순신상, 세종대왕상처럼 국가가 국민을 계도하는 데 예술을 도구로 이용한 것이 우리 근대 공공미술 역사의 출발이다. 한국인이 공공미술을 '계몽'이 아닌 '작품'으로 누리게 된 것은 사실상 80년대부터다. 서울올림픽이라는 대형 국제행사를 앞둔 정부는 급하게 나라를 치장하기 시작했고, 이때 근거가 된 게 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 안의 건축물미술장식제도 조항이다. 이 조항은 연면적 3,000㎡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1% 이상을 미술 장식에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것으로, 정부는 84년 서울시에 한해 건축물 설치를 의무화했다가 95년 대상 건축물 규모를 1만㎡로 완화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무화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미술 자료 웹사이트인 '공공미술포털'에 따르면 95년부터 2013년까지 이 법에 따라 설치된 미술 작품의 수는 총 1만3,903개. 이 가운데 조각이 1만950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중의 예술적 취향이나 욕망과는 무관하게 추진돼온 건축물미술장식제도는 적지 않은 폐단을 낳았다. 공사비를 절감하려는 건축주들은 좋은 조각가보다는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조각가에게 집중적으로 작품을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건축주와 조각가를 알선해주는 화랑과 브로커까지 활개쳤다.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신정아 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도 그런 브로커 중 한 명. 재직 당시 그는 대기업과 관공서의 신축 건물에 조형물을 납품하고 중간에서 2억원을 챙긴 사실이 2007년 검찰 수사과정에 드러나기도 했다. 일련의 논란들은 2011년 건축물미술장식제도가 의무에서 선택 사항으로 바뀌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리의 온상에서 공동체 활성화의 통로로
대중을 위한 예술보다는 건축물 장식에 가까웠던 한국 공공미술은 2000년대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제도 개선을 위한 첫 공청회가 열렸고 2006년부터는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의 문화 소외ㆍ낙후 지역 32곳의 생활 환경을 공공미술을 통해 개선한다는 취지로 2006~2007년 벌인 '아트 인 시티'가 첫 사업이었다. 그 사업은 주민과 함께 낡은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폐교를 동네 사랑방으로 개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서민의 삶 전반에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려는 첫 시도이기도 했다. 조형물 설치에 그쳤던 기존의 공공미술에 주민 참여, 도시재생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기간이 짧아 지역민들의 필요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업 첫 해 조성된 서울 종로구 이화동 일대의 벽화거리가 반향을 얻으면서 전국 지자체에 '공공미술=벽화'라는 공식을 심어주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부추기기도 했다.
2013년은 100여 곳에 달하는 벽화거리와 1만4,000여 개에 이르는 조각 앞에서 피로해진 한국 사회가 공공미술에 대한 회의와 성찰을 본격화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오는 3월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앞둔 안양시는 새로운 조형물 설치보다 기존 작품 철거 및 보존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2007년부터 4년간 150억원을 들여 추진했던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지난해 전담팀을 해체하고 예산을 8,300만원으로 대폭 줄였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여전히 벽화거리와 예술마을 조성이 한창이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는 2016년까지 3.5㎞에 이르는 세계 최장 벽화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렘 콜하스, 아이웨이웨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만든 공공조형물로 주목 받았던 광주광역시는 야심 차게 차기 사업을 준비 중이다.
올해 이뤄질 사업들이 한국 공공미술의 고질적 병폐에서 벗어난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줄지, 아니면 또 하나의 벽화 마을을 추가하는 데 그칠지 주목해 봐야 할 일이다.
"더 크게, 더 빨리"행정과 예술의 동상이몽
지난달 11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개최한 공공미술 심포지엄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성토의 장이나 다름 없었다. '한국 공공미술의 역사를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취지로 연 이날 심포지엄에서 불만을 토로한 이들은 예술위가 2012~2013년 진행한 공공미술사업 '도시공원 예술로'에 기획자로 참여한 예술가들이었다.
'도시공원 예술로'는 건축물미술장식제도의 개정을 계기로 기획된 첫 사업이다. 건축주와 작가의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2011년 11월 '선택적 기금제'를 도입, 건축주가 건축 비용의 1%를 미술 작품에 사용하거나 작품 설치 비용의 70%를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게 했다. 예술위는 그렇게 조성된 기금으로 낙후된 공원과 빈터를 예술을 통해 개선키로 하고, 부산광역시, 경남 함양군, 충남 공주시, 충남 계룡시 등 총 4곳의 지자체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해 '도시공원 예술로' 사업을 추진했다. 2년여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에 대한 예술가와 지자체의 극명한 인식 차를 드러냈다.
부산 사하구 장림공단 내 공터를 맡은 와이즈건축 장영철 대표는 "공공미술은 형용모순인 것 같다"는 말로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공터와 가까운 곳에 지역 작가 레지던시인 홍티아트센터가 있다는 점에 착안, 이곳을 단순한 조각 공원이 아닌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장 대표는 공단이 들어서기 전 농경지였던 지역의 기억을 되살려 두렁길을 조성하고 그 길을 경계로 생성된 사각의 공간을 '둔벙(웅덩이의 방언)'이라고 명명했다. 농경사회의 저수지이자 마을 주민의 소통 장소였던 둔벙이 오늘날 지역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담는 전시 공간으로 부활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은유, 기억의 복원, 상징 같은 개념적 어휘로 장식된 초기 기획안은, 그러나 지자체와 대면하는 순간 무너졌다. 부산시가 원하는 것은 나무와 조각상이 있는 평범한 근린공원이었다. 터를 비워둔다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팽팽하게 대립하던 양측은 결국 지난해 10월 더 이상 일정을 미룰 수 없게 되면서 한 발씩 양보했다. 부산시가 둔벙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는 대신 장 대표는 둔벙의 개수를 줄이고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장 대표는 "지자체가 도시기반시설 조성에 공공미술을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공미술이 지역 환경 개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다 보니 지자체가 공중 화장실, 도로 같은 기반시설을 만들 때 공공미술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에는 기반시설도 포함되기 때문에 기능에 대한 요구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 들어가는 미적 취향은 작가에게 귀속된 사안이므로 건드려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조형물은 크기를 2배로 늘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작품은 스케일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되기도 합니다.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퍼포먼스도 일체 금지됐습니다. 그 돈으로 나무 하나를 더 심으라고 하더군요."
계룡금암공원을 맡은 사회적기업 티팟의 조주연 대표도 "더 많이 더 크게"를 선호하는 공무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주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기획한 시민노래단은 "정산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예산 항목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다른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주민들이 어떤 공원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작업도, 조형물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구조 검토도 반대에 부딪쳤다. 조 대표는 "거기 들일 돈으로 공원에 설치할 조각을 더 만들라는 게 지자체의 요구였다"고 전했다. 결국 조형물을 5개에서 8개로 늘리는 대신 구조 검토는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해 5월 열린 사전행사 때 시장이 참석해 아파트 두 채 값을 들인 사업이라고 강조하더군요. 공무원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전국에 벽화가 그렇게 많은 것도 적은 돈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에요."
단기 실적주의는 공공미술의 짧은 주기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한국 공공예술의 주기는 대략 1년이다. 장소 물색, 주민과의 대화 및 지역 연구, 작품 구상, 제작, 설치까지의 과정을 1년 안에 끝내야 하다 보니 정작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은 2개월 남짓이다. 정부의 공공미술 사업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금처럼 짧은 호흡으로는 주민과 소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해외의 경우 공공미술의 주기를 3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잡기도 한다. 1977년 독일 북서부의 중소 도시 뮌스터에서 시작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을 주기로 열리고 있다. 작가들은 도시를 답사하고 지역을 선택, 그 곳의 지형적∙역사적∙문화적∙사회적 맥락을 연구해 작품에 반영한다. 일본 혼슈(本州) 서남단 세토우치(瀨湖內) 해의 여러 섬에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공공미술 성격의 작품을 전시하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도 3년마다 열린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의 심혜화 팀장은 "정치인 임기를 고려하면 한국에선 3년이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지방예술진흥사업은 작가를 파견해 작품을 설치하고 떠나는 단발성인데 이는 중앙정부의 돈을 지방에 뿌리고 오는 것 밖에 안됩니다. 작가가 지역에 오래 거주하면서 동네의 필요를 살피고 문화 자생력을 키워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조주연 대표는 "지자체에 오히려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와의 갈등을 경험한 예술가들 중에는 중앙정부의 입김이 더 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러면 악순환이 이뤄질 뿐입니다.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공공미술 사업의 목적이라면 공공미술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을 성숙시키는 것도 사업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금천 미세스, 주부들이 결성한 예술가 그룹
20일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작가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에 작은 카페가 열렸다. 지역 주부들로 구성된 작가그룹 '금천 미세스'가 주민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세 번 문을 여는 셀프 카페 '셀까꽁'이다. "언니들이랑 동네 아저씨들이 점심시간에 커피 마시고 수다 떨다 가요." 금천 미세스 멤버인 차정녀 씨는 인근 공단의 여성 노동자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차 씨를 포함해 전원이 40~60대인 금천 미세스는 2009년 금천예술공장 개관 이래 처음이자 유일하게 결성된 주민 예술가 그룹이다. 이들은 2012년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당당하게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했다.
금천 미세스가 탄생한 것은 2010년 이곳에 입주한 임흥순 작가가 그 해 12월 주부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을 열면서다. 임 씨는 홍보 전단을 보고 모인 주부 19명과 미술을 매개로 다양한 놀이를 했다. 속에 담아놓았던 말을 수세미 위에 바느질로 수를 놓는다든가, 약주를 좋아하는 부친을 위해 막걸리병으로 트로피를 만드는 식이었다.
"그림 잘 그리는 법은 다른 곳에서도 배울 수 있으니까 주민들과는 주로 이야기하고 몸을 쓰는 활동을 했죠. 예술과 일상을 구분 짓는 편견을 깨고 자신을 표현하는 통로로서의 미술을 알려주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워크숍은 8주 만에 종료됐지만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주부들은 이대로 활동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고 이중 8명이 '금천 미세스'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결성, 미술을 통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금천예술공장 오픈스튜디오에서 주민들에게 작품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도슨트 등으로 활동하다가 아예 작가로 들어 앉았다. 지난해 말에는 입주 작가와 주민이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미국에는 팝아트, 금천에는 밥아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금천교육협동조합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오현애 씨는 "금천 미세스의 활동은 주로 작가와 주민을 매개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전시한다고 하면 안 오는데 밥 먹자고 하면 잘 모이거든요. 밥이나 커피를 이용해 문턱을 낮춰 작가들의 입김이 주민에게 더 많이 끼쳐지도록 돕는 역할이죠."라고 설명했다.
입?후 기존 멤버 일부가 빠지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서 현재 활동 인원은 5명이다. 동네에서 국수집을 하는 최해성 씨는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다가 금천 미세스의 활동을 보고 참여하게 됐다. "또래의 주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거기서 다른 의견은 통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무슨 얘기를 해도 허용돼요. 그런 의미에서 전 예술이 정의(正義)라고 생각해요." 금천 미세스에게 이곳은 치열하고 수상하게 굴러가는 사회 속에서 잠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쉼터다. 일상을 다르게 본다는 예술의 본질은 이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휴식을 안겨준다.
6월이면 금천 미세스의 입주 계약이 종료된다. 거점이 사라지면 기껏 피어 오른 불씨가 사그라지지는 않을까?
"우리는 결국 흩어지기 위해 모인 게 아닌가 해요." 최해성 씨가 말을 이었다. "나는 공동체도, 개인도 아닌 무형의 존재였어요. 금천 미세스에서 공동체의 미세한 불꽃을 맛 봤다면 이제 다른 곳에 퍼뜨릴 차례 아닐까요."
다시 뛰는 공공미술, 사람을 향하다
2000년대 중반 시작된 관 주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한 축이 중앙정부라면 다른 축은 지자체다. 일부 지자체는 공공미술이 지역 홍보 및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자체 예산으로 공격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안양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광주시 폴리프로젝트, 인천시 지역공동체문화만들기가 대표적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회의론이 가장 먼저 불거진 곳도 지자체들이다. 빠듯한 예산을 쪼개 사업을 벌였으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처음으로 돌아가 문제점을 되짚는 중이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은 3월 28일부터 열리는 제4회 APAP 행사를 앞두고 기존 작품의 철거를 추진 중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3회에 걸친 행사에서 안양시 전역에 설치된 조형물은 총 92개. 이중 10~15점이 철거되고 5~10점이 이전될 예정이다. 1회 때 70억원이던 예산도 올해는 30억원으로 줄었다. "4회 행사는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중심이 될 겁니다. 이번에 설치되는 조형물은 3점뿐이에요." 안양문화예술재단의 심혜화 팀장은 앞으로 유형의 작품은 가급적 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2년 예술 도시 구축을 목적으로 일찌감치 공공미술 사업에 뛰어든 안양시는 2005년 도시 전역에 작품을 설치하는 대규모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 포르투갈의 알바루 시자, 네덜란드의 세계적 작가그룹 MVRDV 등이 참여한 첫 행사는 언론의 관심을 끌며 지역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에 고무된 시에서는 재차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 2, 3회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닥쳤다. 90여 개로 늘어난 작품은 관리하기가 힘에 부쳤고 주민들이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즐기는지도 미지수였다.
지난해 10월 안양파빌리온에 문을 연 공공예술 전문 도서관은 작품에 대한 감상법을 다각화하기 위한 시도다. "작품을 보고 어떤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의문을 해소해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도서관에서는 공공예술을 비롯해 건축∙미술∙도시공학 서적 2,000여권을 열람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소규모의 아카이브 센터를 마련했다. 이곳에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APAP에 참여한 작가들의 스케치, 건축 도면, 주고 받은 메일 등 작품 제작 과정 전반을 기록한 자료가 보관돼 있다. 일반인들의 참여는 아직 많지 않지만 건축과 학생들이나 미술 행정가들은 자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안양을 찾기도 한다.
공공예술 전문 도슨트도 육성했다. 야외에 놓인다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일반 미술 도슨트와는 전혀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는 판단에서다. "일반 미술 도슨트는 작품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공공미술 도슨트는 반대로 작품에 다가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갑자기 비가 올 때면 임의로 동선을 바꾼다든지 관람객 연령대에 맞춰 해설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등의 융통성도 필요해요." 지난해 여름 교육을 마친 도슨트들은 10~11월 APAP 투어에 투입됐다.
"지금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재단이 추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작업은 공공미술 작품의 수명을 결정하는 일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몇몇 기관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작품 수명 부여하기'는 훼손과 철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공미술 작품에 필수적인 작업이지만 국내에선 논의된 적조차 없다. "영국 일부 기관에서는 작품을 설치할 때부터 수명을 정합니다. 재질의 특성 때문에 5년, 재개발 구역에 설치됐기 때문에 1년, 이런 식으로 수명을 정해 놓으면 작품이 지역의 변화에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공공미술이 지역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즉 더욱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형태로 바뀌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출판기획자 길예경 씨는 최근 영국의 공공예술 커미셔닝 기관 시추에이션스가 발표한 '공공예술의 새로운 규칙'을 번역해 건축신문에 기고했다. 12개의 규칙 중 두 번째는 '영원하라는 건 아니다'이다.
"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식의 일일 조각에서부터 100년에 걸쳐 미래 도서관을 짓는 일까지, 예술가들은 공공예술 작품의 기대 수명을 바꾸고 있다. 장소도 움직이고 바뀌는데 공공예술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는가?"
현재 안양이 하고 있는 작업은 일종의 토?다지기다. 지금까지 꽃의 색깔과 모양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꽃이 지속적으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심혜화 팀장은 "지금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들"이라고 말한다.
"동네 예술가들이 모여 자생적으로 마을 환경을 개선하려고 해도 회의할 장소가 없거나 하물며 커피 한 잔 살 돈이 없어 무산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지원들은 당장 성과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공공미술 사업에서 제외되기 일쑤죠. 벽화, 조형물처럼 가시적인 것에만 돈을 쓴다는 점에서 한국 공공미술은 완전히 포화 상태입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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