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회오리 바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스크린에 재현한 대작이다. 2011년 '최종병기 활'로 충무로에 사극 바람을 일으킨 김한민 감독의 신작이다.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영화의 공식적인 개봉 시기는 미정이다. 그러나 영화 관계자들은 7월 개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제작사 등이 '명량'의 구체적인 개봉 시기를 밝히지 않는 주된 이유로는 '눈치 작전'이 꼽힌다. 올 여름 극장가는 대형 사극들의 치열한 격전장이 될 전망이다. '명량'이 잠재적 경쟁작들의 개봉 시기와 완성도 등에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름 개봉이 유력한 퓨전 사극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투자배급사도 '하반기 개봉'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연막작전을 펴고 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제작비 100억이 넘는 대작들은 몇 월 개봉이라는 식으로 시기를 일찍 알렸는데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구체적인 일정을 감추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요즘 극장가는 전쟁 중이다. 불황 때문에 형성된 전장이 아니다. '사상 최고'라는 수식으로 표현되는 대호황이 빚어낸 다툼이다. 한국영화산업은 2012년 한국영화 관객 1억명 시대를 열기 무섭게 지난해 최고 관객 기록을 새로 세웠다.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관객수도 매해 치솟고 있다.
호황은 활발한 영화 제작과 치열한 수입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는 11월까지 803편이 개봉됐다. 12월을 빼고도 2012년 631편보다 172편이나 늘었다. 2011년 전체 개봉작은 439편이었다. 2년 사이 개봉작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늘어난 개봉작은 주로 외화다. 외화 개봉작은 2011년 289편에서 지난해 635편으로 껑충 뛰었다. 극장 관객이 급증한데다 IPTV라는 새로운 황금시장이 열리면서 외화 수입도 폭증했다.
경쟁작들이 늘면서 개봉과 상영을 하기까지 영화 관계자들은 피를 말린다. 기자와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 일정 잡기부터가 녹록하지 않다. 시사회 일정은 보통 배급사들의 협의와 조정을 통해 정하는데 일정 확정의 첫 번째 원칙은 선착순이다. 한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각 배급사가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시사회 일정을 정하는데 먼저 도착한 이메일에 담긴 일정을 최우선시한다"며 "시사회 일정 확정부터가 로또 당첨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등급 분류도 개봉까지 가는 험난한 길에서 높은 장애물로 작용한다. 영화사들이 영상등급위원회에 개봉 예정 영화들의 등급 분류 신청을 넣어 등급판정을 받기까지 보통 한 달이 걸린다. '주문'이 워낙 밀려있기 때문이다. 제한상영가 등급 등 원치 않았던 등급판정을 받아 재신청에 들어가면 영화사들은 초비상이 걸린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등급을 재신청하면 다시 한 달이 걸려 개봉을 못할 지경이 된다"며 "이미 등급 신청을 한 다른 영화사에 사정해 중간에 끼워넣기식으로 등급판정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눈치보기도 격해졌다. 영화 홍보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포스터에 예전과 달리 개봉월일을 다 넣지 않고 개봉월만 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최근하 과장은 "요즘은 개봉 시기에 닥쳐서도 개봉일을 예정보다 1, 2주를 당겼다 늦췄다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포스터는 대개 개봉 3, 4개월 전에 나오는데 대부분 홍보 효과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개봉월만 명기한다"고 덧붙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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