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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월 25일] 호소카와에 기대한다

입력
2014.01.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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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군수차관 등을 지내다 2차대전 패전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3년 간 수감됐다.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나 복권된 뒤 자민당 초대 간사장, 외무장관을 거쳐 일사천리로 1957년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일본인에게 기시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을 필생의 사명으로 여긴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의회에 나가 전쟁할 수 있는 자주헌법 제정과 핵보유의 필요성을 당당히 주장했다. 여론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마무리 짓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그는 일본 국가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다.

기시 전 총리에 대한 아베의 존경심은 신앙에 가깝다. "나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지만 기시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공언하는 그는 1년여 전 총리에 다시 오른 뒤 외할아버지 묘소를 찾아 "같은 신념과 결단력으로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겠다"고 맹세했다. 집단적자위권 추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침략전쟁 부인 등 그의 군국주의적 역사관은 외할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국가주의를 떠올린다. 중의원 의원이었던 친할아버지 아베 간(1894~1946)이 도조 내각 퇴진을 요구하고 전쟁에 반대했던 평화주의자였음에도 아베가 친할아버지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아베의 뿌리 깊은 '기시 유전자'는 바뀌기 어렵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베 정권이 바뀌거나 그를 견제할 강력한 야당세력이 등장하는 것뿐이다. 다행히 이번에 제대로 멍석이 깔렸다. 다음달 9일 치러지는 도쿄도지사 선거다. 보궐선거로만 여겨졌던 이 선거는 호소카와 모리히로(76) 전 총리가 아베의 자민당 후보의 맞상대로 출마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등 여야의 전직 총리와 야권의 거물인 오자와 이치로 생활당 대표가 대거 지원에 가세하면서 판이 커졌다. 아베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탈핵'이 이들의 주된 공약이지만, 전직 총리들이 이례적으로 후보와 지원군으로 나선 선거는 아베 정권의 신임투표 성격으로까지 폭발력이 커질 수 있다.

후보로 나선 호소카와는 1993년 총리로서 경주에서 가졌던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인의 강제 개명과 종군위안부, 징용 등에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말해 인상을 남겼다. 그의 발언은 2년 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의 토대가 됐다. 2010년에는 "한일합방은 강제된 조약"이라고 해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은 당시 민주당 정권을 비판했다. 그의 출마가 기대되는 이유다.

호소카와는 며칠 전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헌법, 안보, 인접국 관계에서 우려되는 게 있다"며 "아베가 추진하는 집단적자위권은 해외에서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명백히 헌법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야스쿠니 참배도 "여러 외교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나라면 가지 않겠다"고 했다. '탈원전'에서 그치지 않고 아베 외교정책 전반을 견제하는 야권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관계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일본 국민이 아베를 지지한 것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에 대한 기대감에서지, 이념 때문이 아니다. 한국은 원칙도 중요하지만 일본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다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호소카와 정도의 무게감과 역사관이라면 일본의 민심을 현실정치로 이끌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는 1993년 자민당 일당체제의 토양이 된 '55년 체제'를 무너뜨리고 전후 처음으로 '비(非)자민 연립정권'을 탄생시킨 경험과 힘을 갖고 있다. 마침 미일 핵심 현안인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 문제로 맞붙은 오키나와현 나고 시장 선거에서 기지 이전을 밀어붙이려는 아베 측 후보가 이에 반대하는 현 시장에게 패해 도쿄 선거를 향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호소카와가 93년에 이어 다시 한번 자민당 보수정권의 질주에 제동을 걸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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