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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 박철민, "끝까지 촬영 못 해도 해보자… 그러다 만난 작은 기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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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 박철민, "끝까지 촬영 못 해도 해보자… 그러다 만난 작은 기적들"

입력
2014.01.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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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각오했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이니까. 그래도 많이 낯설었다. 그의 얼굴을 덮은 슬픈 그림자가. 파안과 수다에 주로 쓰이던 얼굴근육은 분노와 서러움에 꿈틀거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감초라 표현되곤 하던 그의 연기 이력을 뒤집는다. 아마도 배우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듯. 최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배우 박철민은 "이런 매력적인 주인공을 언제 또 하겠냐 싶어 출연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와 그의 가족의 사연을 밑그림 삼았다. 산업재해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사회 이목을 끌었던 소재의 영화화는 쉽지 않았다. 박철민도 "제대로 투자를 받아서 다 찍을 수 있을까, 상영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던"영화다. "중간에 엎어져도 아쉬워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촬영에 들어간 영화"는 대중들의 십시일반 투자에 힘입어 내달 6일 개봉까지 하게 됐다.

박철민은 딸의 급작스러운 병사 이유를 찾기 위해 거대 기업의 합의 제안도 거부하고 법정싸움까지 나서는 속초의 택시기사 상구를 연기했다. 딸이 직장에서 얻은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무지렁이 아빠 상구의 눈물이 가슴을 종종 누른다. 박철민은 "힘없는 소시민이 조금씩 바위처럼 단단해지는 과정을 그려야 해서 부담이 엄청난 역할이었다"며 "표현하고 싶은 욕심도 워낙 많았다"고 말했다.

박철민의 출연엔 대학 2학년이 되는 딸의 의견이 작용했다. "(2년 전) 출연제의를 위해 찾아온 김태윤 감독 등과 늦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 3시쯤 집에 들어갔을 때" 딸은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한번 읽어보라며 시나리오를 줬는데 이른 아침 딸이 아빠를 깨웠다. "슬프고 가슴 아프다"고 딸은 말했고 "아빠가 꼭 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했다. 박철민은 "그 뒤로 제가 더 적극적이 된 듯하다. 촬영 중에도 저도 모르게 또는 의도적으로 딸을 떠올리며 연기하곤 했다"고 밝혔다.

전라도 사투리로 대중들을 웃겨온 그는 "강하고 무뚝뚝한" 강원도 사투리로 관객을 맞이한다. "스스로도 너무 생소해 표준어를 구사할까 했는데"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유미씨 아버지 말투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투리에 집중하면 감정을 놓치고, 감정에 집중하면 사투리를 놓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점차 상구가 됐다.

상반된 두 역할을 동시에 연기하며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 드라마 '구암 허준'과 '또 하나의 약속' 촬영이 겹쳤을 때다. "아침엔 용인 촬영장 가서 감초 역할로 현란하게 까불고 오후엔 속초에서 딸을 일찍 보낸 아비 역할을 했으니… 허…"

박철민은 촬영 중 "작은 기적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선 그냥 와서 촬영하라 그러고 돈 때문에 촬영이 지연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독지가가 4,000만원을 투자하는" 식의 기적이었다. 심지어 "3월말에 눈이 많이 내리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폭설이 내려주는" 일도 벌어졌다. 무엇보다 "5만원씩 돈을 내준 사람들의 용기가 고맙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가족'은 개인 투자자 100여명의 투자금 12억원과 7,722명이 모은 후원금 3억567만5,000원으로 만들어졌다.

"저는 정말 하찮은 속물이에요. 연기 욕심으로 이 역할을 맡았거든요. 그런데 저보고 대단하다며 박수 쳐주시면 부담스러워요.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내주신 분들이 정말 대단하죠. 배우는 굉장히 이기적인데 제가 조금이라도 이타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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