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아들을 둔 이재명(47ㆍ가명)씨는 재작년 봄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척추가 한 쪽으로 기운 아들의 손을 잡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동네병원에서는 "뼈가 어느 정도 기울어졌는지 보자"며 컴퓨터단층(CT)촬영을 했다. 5만원을 내고 검사를 한 뒤 척추측만증 판정이 나오자 동네병원에서는 정밀 진단을 위해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씨가 CT 필름을 CD에 담아 달라고 했더니 동네병원 사무장은 "어차피 큰 병원 가면 또 찍을 테니 그냥 가라"고 했다. 실랑이 끝에 복사비용 1만2,000원을 내고 CT 필름을 받았지만 대학병원에서는 "호환이 안 돼 판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동네병원보다 더 비싼 7만5,000원을 내고 한번 더 CT를 찍었다. 검사비를 3중으로 낸 것도 억울했지만 여러 번 방사선에 노출된 것도 개운치 않았다. 이씨는 "최소한 병원간 CT 공유는 가능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2일 진단용 방사선 피폭량이 1.5배 늘어난 원인으로 CT를 꼽았다. 2007년 371만9,090건이었던 CT 검사 횟수는 2011년 627만5645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CT보다 방사선 피폭량이 더 많은 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PET-CT)촬영도 늘었다. 암 조기 진단과 수술 등을 위해 더 정밀한 영상을 찾기 때문이다. 서울 한 대형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는 "PET-CT 촬영을 하지 않고 암 수술을 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전국의 대형병원에서 PET-CT가 일반화했다"고 말했다.
CT, PET-CT 기기는 과잉보급 상태다. 2011년 인구 100만명 당 CT 기기는 35.9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번째로 많고 평균(23.2대)을 크게 웃돈다. PET-CT도 인구 100만명 당 3.3대(OECD 평균 1.7대)로 5번째로 많이 보급됐다.
암 환자의 생존율 제고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잉 검사도 적지 않다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추측한다. 안기종 환자연합회 대표는 "디스크 환자의 경우 병원에서 CT를 찍어 진단한 후 수술을 권하면 다른 병원에서 또 CT를 촬영한다"며 "환자에 대한 방사선 안전기준이 없다보니 환자들은 자기가 방사선에 얼마나 피폭되는지도 모른 채 촬영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가의료 장비 효율적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30일 이내 같은 병으로 CT를 재촬영한 경우 53%가 5년 이상 된 노후 장비였는데, 노후 장비가 많은 소규모 병∙의원의 과잉진료를 추측할 수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신형 장비는 대형병원이, 노후 장비는 병ㆍ의원들이 보유하고 있는데 기기의 노후 정도와 무관하게 수가가 같아 경영압박을 많이 받는 병ㆍ의원들이 과잉촬영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환자 개개인이 의료 방사선 피폭 누적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국가환자방사선량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경희대병원 등 9개 병원에서 환자들이 개인별 방사선 피폭량을 조회하는 시범사업을 벌였는데, 이를 전국 병원으로 확대해 환자 개개인의 정보를 DB화한다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방사선 검사 전에 환자들이 예상 피폭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신의 피폭량을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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