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 것도 없다. 우리는 이미 2002~2011년 중국에서 약 1조800억달러(1,150조원)가 불법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불법자금 전문기관인 글로벌 파이낸셜 인테그리티(GFI)가 22일 중국 최고 권력층의 역외탈세 의혹 제기에 내놓은 반응이다. 중국 사회의 재산 해외 유출 및 도피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말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조차 2011년 보고서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로 달아난 중국의 부패 관료가 1만6,000~1만8,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을 정도다. 한 중화권 매체는 지난해 베이징공항을 통해 해외로 달아난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관리만 354명이며, 이들이 평균 9억위안(1,600억원)을 빼 돌렸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중국에선 부인이나 아이들을 해외에 이주시킨 뒤 혼자 남아 있는 공무원을 뜻하는 뤄관(裸官ㆍ옷 벗고 도망가는 나체관원)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언론에 등장한다. 미국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게 중국인들 때문이란 우스개 소리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경쟁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다 결국 낙마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 재판과정에서 그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아들을 위해 프랑스 칸에 350만달러 별장을 산 것이 이런 소문을 사실로 입증해준다.
이번 ICIJ의 폭로에서는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가와 부호도 재산을 해외로 빼 돌리는 데 열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동산 투기로 큰 돈을 벌었거나 증시 상장 과정에서 떼돈을 쥔 졸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를 차렸다.
돈 있는 중국인들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데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유 재산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주의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중국에선 모든 땅이 기본적으로 국가 소유인 만큼 주택은 70년, 상업용 건물은 50년 사용권만 부여된다. 개혁개방 이후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공무원이 각종 인허가권을 쥐면서 부패가 만연한 환경이 된 것도 이유가 된다. 뇌물을 써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검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 유령회사들을 동원해 위장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공무원도 이렇게 받은 뇌물을 안전한 곳에 숨겨 놓고 싶기 마련이다.
더구나 시 주석 취임 이후 반부패 운동이 가속화하면서 언제 들통날 지 모를 자금을 해외로 빼 돌려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공무원 재산신고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점도 이런 움직임을 부추긴다. 유령회사를 통해 투자할 경우 기업으로서는 세금을 크게 줄이고, 해외투자로 속여 혜택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중국 정부는 최근 해외로 도망친 공무원을 다시 붙잡아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국무원은 올해부터 개인의 해외 금융 자산 신고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최고 지도부의 가족마저 해외에 유령회사를 세우고 비밀계좌를 가졌다는 사실 앞에서 중국의 이러한 단속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불투명하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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