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교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나라에 외교 전성시대는 불가피한 추세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처럼 특이한 국가특성을 갖고 어려운 외교 안보 환경에 처한 나라는 지구 상에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반도는 세계적 미중 갈등구조와 동아시아적 중일 갈등구조의 중심에 위치한다. 북한의 핵무장과 체제위기로 인해 한반도는 평화와 분쟁, 그리고 통일과 분단 고착화의 기로에 서 있다. 미래 한국의 평화와 번영은 외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외교시대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외교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한국은 남다른 국가적 특성이 있는데, 이로 인해 추가적인 외교숙제가 있다. 첫째,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평화외교ㆍ동맹외교ㆍ통일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또한 세계 유일의 불법 핵 개발국인 북한에 맞서 비핵화 외교와 핵 억제외교를 추구한다. 둘째, 한국은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안보 취약국으로서 안전보장과 역내 평화를 위해 안보외교와 지역 외교를 추구한다. 셋째, 한국은 경제적 대외의존도 100%,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에 달하는 경제 취약국이자 에너지·자원 빈국으로서 생존을 위한 통상외교ㆍ에너지자원외교ㆍ원자력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세계적 중견국으로서 지역분쟁ㆍ핵확산ㆍ테러ㆍ해적ㆍ기후변화ㆍ난민ㆍ빈곤 등 세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세계외교ㆍ국제안보외교ㆍ개발외교를 추구한다. 경제통상 국익을 위해서도 세계평화가 필수적이다. 다섯째, 한국은 최고수준의 개방국으로서 700만 재외동포와 연간 1,500만 해외여행객이 있는바, 이들을 위한 영사외교ㆍ동포외교ㆍ공공외교를 추구한다.
대부분 나라도 한두 가지 특이 외교과제를 갖고 있지만, 한국처럼 이렇게 많고 어려운 외교과제를 동시에 가진 경우는 보기 어렵다. 또한, 국민의 요구수준도 남달리 높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노태우 정부 때 냉전 질서의 변동기를 맞이하여 시대적 추세를 잘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외교 전성시대를 가졌다. 외교 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있었다. 사실 현재 우리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근간은 모두 당시에 만들어진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후 우리 대외정책은 지속성과 통합성을 상실한 채 정권의 변화에 따라 대외정책도 큰 폭으로 변동하며 표류하여 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 모처럼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전반적인 틀이 재정립되고 있다. 대북ㆍ대외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도 점차 완화되고 있다. 과거 단편적인 정책에서 벗어나서, 신뢰외교라는 큰 틀 속에서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을 위한 유라시아 구상,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한 중견국 구상 등이 있다.
활발하고 성공적인 정상외교,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부의 활약, 국가안보실 체제의 정착,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외교정책구상 등은 바로 한국의 외교 전성시대를 예고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 요소가 부족하다. 바로 외교구상과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현장 외교인력의 부족이다.
우리와 유사한 규모와 지위의 국가들도 우리보다 훨씬 적은 외교수요에도 최소한 1.5배가 넘는 3,000명 이상의 외교인력을 갖고 있다. 탈냉전기 들어 수교국이 급증했지만, 우리 외교인력은 그대로다.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고 한반도와 동북아가 격변기에 들어 외교수요가 폭증했지만, 외교인력은 별 변동이 없다.
우리는 향후 10년 간 지속될 한반도와 동북아의 대전환기를 맞이하여 평화와 통일의 대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외교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분단국, 안보 취약국, 경제 취약국, 자원 빈국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남다른 외교 투입이 필요하다. 10년 내 3,000명 외교인력 확보를 목표로 하여 매년 100명 이상의 신규 외교관이 공급되어야 한다. 외교인력뿐만 아니라 국가적 총 외교역량의 확충을 위한 외교역량 발전법도 필요하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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