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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1월 23일] 암 권하는 예능, 암 권하는 사회

입력
2014.01.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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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암 유발 예능."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벌여 매주 탈락자를 가리는 tvN 예능프로그램 시즌 2를 두고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스트레스가 주요 발암 요인이라는 통설을 기반에 둔 농담이다. 재밌자고 본 예능 프로그램인데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다. 프로그램에 '친목질'과 '왕따', 사기와 협잡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막장 드라마와 같은 매력일까. 는 케이블 프로그램 가운데 상당히 높은 시청률인 2%를 기록했다.

지난해 방영된 시즌1에서도 패거리 짓기와 특정 출연자에 대한 견제 및 은근한 따돌림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 이름에 걸맞게 두뇌게임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체계가 우세했다. 현재 방영 중인 시즌 2에서는 출연자들이 본인들끼리 정한 서열에 따라 배제하고, 배제당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학연과 지연을 앞세워 세를 규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선배' '오빠' '누나' 등 나이와 경험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며 설득에 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눈치 보며 다수의 편에 속하는 것, 튀거나 찍히지 않는 것, 즉 처세를 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출연자들이 이런 면면을 보이는 건 제작진의 의도에 따른 걸로 보인다. 총괄 PD는 한 인터뷰에서 촬영장을 심리 실험실에 비유하며 "시청자들에게 경쟁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개인 간의 심리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 때문인지 시즌1과 달리 제작진은 개인의 해석능력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게임보다 이합집산이 중요한 게임으로 주 게임과 '데스매치(탈락 후보자들이 탈락자를 가리는 게임)'를 구성했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손발은 저리고 가슴은 먹먹해졌다.

시청자들이 를 보며 스트레스받고 심지어 울적해하는 이유는 자신이 겪었던 폭력과 배제의 경험을 떠올리기 때문인 것 같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일진 등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숨죽여야 했던 일상,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이를 묻고 답하며 권력관계가 결정지어지는 경험, 회사에 들어가 노동력을 팔기 위해 지워내고 닦아냈던 자존심과 개성, '까라면 까'라는 상사의 요구. 출신대학과 학번을 묻고 답하며 특별한 친분을 형성하는 사람들, 그렇게 권력이 되는 '친목'들. 주말 '예능' 프로그램 는 시청자들이 겪었던 배제의 경험을 환기하고 일상의 비루함을 상기시키지만, 대안을 제시하거나 희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보며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다는 거다. 지난 주말 응원했던 참가자가 탈락했다. 나는 전 프로게이머인 홍진호를 응원했는데 그가 프로그램의 이름대로 '지니어스'한 면모를 보이며 제작진이 숨겨놓은 '필승법'을 찾아내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시즌 1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시즌 2에서는 7회에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시즌1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진 비범한 역량 덕분이겠지만, 그의 개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이 주어진 덕도 있다. 게임을 준비해 내놓은 건 제작진이다. 의도로 설계한 결과물일 것이다. 시즌1에서는 명민한 개인이 우승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있었다면, 시즌2에서 제작진은 정치적이고 사람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노련한 사회인이 우승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끝까지 살아남는 이가 누구일지 지켜볼 일이다(방송은 안 보고 기사로 볼 거다).

제작진의 의지는 '친목질'과 '처세술'을 의 생존기술로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은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가? 분명한 건 한국 사회에서 폭력과 배제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 뾰족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부서지거나 찢겨지기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참담한 것은 TV는 끄면 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간단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발암 가능성은 높아져만 간다.

최서윤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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