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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첫 음악영화… 웃음 뒤 밀려오는 삶의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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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첫 음악영화… 웃음 뒤 밀려오는 삶의 연민

입력
2014.01.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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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기타 선율에 포근한 목소리가 포개진다. 어두운 조명 아래 희뿌연 담배 연기가 따스한 분위기를 더한다. 1961년이라는 시간과 뉴욕의 한 카페라는 공간이 낭만을 조장한다. 한데 노래 가사는 처량하기만 하다. 영화의 서두를 장식하는 노래 '날 매달아주오, 제발 날 매달아 주오'(Hang Me Oh Hang Me)부터 심상치 않다. '날 매달아 주오/난 죽어 사라지겠지/목숨엔 미련 없어도/무덤 속에 누워지낼 긴 세월이 서럽네…'라는 가사가 가슴을 파고든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영화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대가인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의 최신작이다. 두 형제 감독의 첫 음악영화라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하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무명의 가수를 내세우고 포크 음악이 스크린을 종주하는 이 영화는 꿈과 인생을 노래한다. 꿈을 좇으나 꿈에 속을 수 밖에 없고 묵묵히 구질구질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다시 헛된 꿈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보통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특별해지고 싶으나 특별할 수 없는 한 인간을 비추기에 영화의 기조는 처연하면서도 안타깝다. 하지만 코엔 형제가 누구던가. 솜털이 곤두서는 장면에서도 삶의 아이러니한 웃음을 심어두곤 하던 재간꾼들 아닌가. 억세게 운 없는 한 무명가수가 7일 동안 겪는 일상의 오디세이를 통해 웃음과 연민과 긴장을 동시에 안긴다. 더불어 60년대를 풍미했던 포크의 도입기로 관객을 인도한다.

카페에서 노래를 하며 스타가 되길 갈망하는 포크 가수 르윈(오스카 아이삭)이 주인공이다. 이미 음반을 냈고 소속사도 있는 신분이나 르윈의 현실은 뉴욕의 겨울바람처럼 차디차다. 듀엣으로 음반을 냈던 동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르윈에겐 코트 하나 걸칠 경제력조차 없다. 이곳 저곳 지인들의 소파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그에게 어느 날 시련이 더해진다. 동료 애인인 진(케리 멀리건)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것 같다며 낙태 비용을 내놓으라 윽박지른다. 르윈은 자신을 평소 살갑게 돌봐주던 명문대 교수의 고양이까지 잃어버린다. 예전 여자친구의 임신중절로 알게 된 의사를 찾아가서도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조바심을 느낀 르윈은 인생역전을 위해 시카고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 유명 프로듀서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이 많다. 아직 앳된 얼굴의 진이 르윈의 부실한 피임을 탓하며 두 겹 콘돔을 들먹이는 장면은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르윈이 시카고로 가는 차 안에서 만난 거구의 음악인 롤랜드(존 굿맨)의 허풍도 웃음을 제조한다. 불현듯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르윈의 시카고 여행은 공포영화나 필름 누아르의 한 장면처럼 꾸며진다) 천연덕스럽게 뭔 별일 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화법은 마치 진지한 농담 같다.

르윈의 범상한 일상을 슬쩍 그리스신화 속 오디세이의 모험에 대입하는 고급스러운 비유법도 접할 수 있다. 고양이의 유별난 이름과 '뿔의 문'(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 말로 진짜 꿈을 의미. 포크 음악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시카고 음악클럽의 명칭이기도 하다)을 등장시켜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오디세이 모험에 빗댄다. 제아무리 군내 나는 삶이라도 모든 인생은 다 위대한 모험이라고 영화는 말하려 한다.

영화는 은근히 암시하기도 한다. 어쩌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르윈의 인생은 둘 중 하나라고. 꿈을 따라 가수로 살아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롤랜드처럼 마약에 기대 사는 처량한 노년을 맞거나 현실에 수긍해 성실한 선원이 된다 해도 아버지처럼 요양원에서 고독한 말년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요컨대 '인사이드 르윈'은 '꿈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나아가 영화는 속삭인다. "꿈에 속아 인생이 고달프면 이 포크 음악 한번 들어보시죠"라고.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이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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