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 가능성이 커지면서 매몰되는 오리도 크게 늘고 있다. 구제역처럼 오리 닭 등에게도 백신을 접종해 이런 비극적인 살처분을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백신 개발 기술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고 답한다.
국내에서 4번 발생한 AI H5N1형의 경우 백신 기술은 이미 개발 완료된 상태다. 이번에 발병한 H5N8형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AI는 변이가 너무 심해 각 유형마다 백신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게 골칫거리다. 예컨대 H5N1형과 H5N8형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혈청 구조 등이 다르다. 해외에서 발견된 AI 유형만 해도 H7N9형(중국), A/H5N1형(베트남) 등 다양하다. 다만 산란율을 약간 떨어뜨리는 H9형 등 저병원성 AI의 경우엔 우리나라에서도 산란용 닭이나 종오리(새끼오리 분양)에게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닭 오리 등 가금류의 생애와 규모를 따지면 백신의 효용성은 더욱 떨어진다. 소보다 사육기간이 짧은 돼지는 최소 6개월을 키우지만 식용으로 쓰이는 닭은 30일, 오리는 35일이면 도축된다. 백신접종 대상이 되는 산란용 가금류는 보통 1년을 넘게 산다. 국내에는 2012년 말 기준 닭 1억4,600만 마리, 오리 1,720만 마리, 꿩 40만 마리 등이 사육되고 있다. 관련 백신이 60~80원, 시술비용 20원 등 접종당 100원 정도 드는 걸 감안하면 접종비용만 170억원이 넘게 든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까지 AI로 인한 살(殺)처분 보상비용을 따지면 백신 접종이 싸게 먹힌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 AI 보상금은 2003년 1,531억원, 2008년 3,070억원, 2010년 822억원 등 4차례 AI의 피해규모는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가금류의 회전율이 너무 빨라(짧은 수명) 백신접종을 해도 AI 발생 전에 죽을 확률이 높아 의미가 없는 반면, 백신접종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2억 마리 가까이 되는 가금류를 상대로 한달 간격으로 백신접종을 하는 일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보통 AI 백신은 사독백신(죽은 균을 넣는 것)이라 폐사는 막을 수 있지만 바이러스가 옮겨가는 걸 막지는 못한다"라며 "게다가 구제역은 사람에게 감염되는 병이 아니지만 AI는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어 함부로 백신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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