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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월 22일] 민영화, 말도 못하나

입력
2014.01.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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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이 사망했을 때 추모 물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세계는 '철의 여인'의 죽음을 크게 애도했지만, 정작 영국 내에선 위대한 지도자의 영면을 기원하는 행렬 못지 않게 그가 남긴 경제사회적 유산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대처리즘'때문이었다. 그가 집권했던 11년(1979~90년) 내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심지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상당수는 대처리즘이 만성무기력증에 빠진 영국경제를 살려낸 최선의 처방이었다고 믿고 있지만, 반대로 실업과 빈부차를 심화시켜 영국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렸다고 확신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논쟁의 중심에 민영화가 있다. 탄광에 통신 항공까지, 영국 역사상 아니 공산혁명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정권을 통틀어 대처 정부 때만큼 국영기업을 민간에 많이 판 예는 없다. 대처 전 수상의 장례가 사실상 국장으로 치러지자 "장례도 민영화해야 한다" "경쟁입찰을 통해 가장 싼 업체에게 장례를 맡기자"는 비아냥까지 나왔던 걸 보면, 30년 흐른 지금도 민영화 공방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공기업 민영화가 가장 활발했던 건 김대중정부 시절이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수입확충, 무엇보다 외자유치를 위해서라면 팔 수 있는 건 다 판다는 입장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그런 식으로 공공개혁을 요구했다. 그 결과 한국통신(현 KT) 포항제철(포스코) 담배인삼공사(KT&G) 등 굵직굵직한 공기업들이 대거 민간에 팔렸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처럼 특정 재벌에 넘어간 예도 있다.

그 때도 반발은 심했다. 특히 노동계와 좌파 진영에선 DJ에 대해 '만델라인 줄 알았더니 실은 대처였다'는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실 대처 수상이야 뼛속까지 우파니까 신자유주의의 아이콘과도 같은 민영화를 강행하는 게 당연했지만, 진보성향의 DJ로선 IMF 위기상황이 아니었더면 굳이 택할 노선은 아니었다.

이후로도 민영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논란은 계속됐다. 그건 민영화의 선악여부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영화가 주는 효율ㆍ수익과, 국유체제의 가격ㆍ고용안정의 무게를 정확히 비교할 수 있는 저울은 분명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각자 필요한 근거와 데이터만 언급할 뿐이다.

사상 최장의 파업으로 이어졌던 철도민영화도 마찬가지다. 철도가 민간에 맡겨지면 적자노선은 다 없어지고 요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 충분히 있어 보인다. 반면 비행기 고속버스와 노선ㆍ시간ㆍ가격경쟁이 불가피한 만큼, 또 전기료처럼 정부통제장치가 부여된다면 맘대로 요금을 올리지 못할 것이란 관측, 이 또한 일리는 있어 보인다.

의료 민영화(정확하게는 영리화)도 그렇다. 대형병원들이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병원비가 폭등하고 그래서 서민들은 아파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이 빚어질 지, 아니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관련 일자리가 늘어나며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외국인들이 줄을 이을지, 선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민영화는 긴 토론과 깊은 논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에서 민영화 세 글자는 이미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철도 민영화는 대통령 공약으로 묶인 상태에서 끊임없는 의심과 맹목적 부인으로 일관되고 있다. 의료 영리화는 이명박정부 시절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간 팽팽한 찬반대립이 결론 나지 않은 채 지금은 아예 논의조차 실종되어 버렸다. 경제관료들은 아예 입에 담으려 하지 않는다.

민영화는 잘못 마시면 독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토론까지 끊어져서는 안 된다. 민영화 좋아할 일반국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말도 못 꺼내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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