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가까이 기차역 대기실에 방치됐던 60대 남성이 뇌경색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코레일은 술에 취한 것으로 보여 잠을 자게 했다고 밝혔지만, 가족들은 의식 잃은 승객을 방치한 코레일이 취객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21일 코레일 등에 따르면 조모(61)씨는 출근을 위해 7일 오전 8시 8분 천안역에서 상행선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조씨는 목적지인 수원역에서 내리지 않았다. 다른 승객 등에 따르면 조씨는 열차가 수원역에 도착하기 전 이미 자는 듯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씨는 종착역인 용산역에서 열차 안을 점검하던 역무원에 의해 발견됐다. 그를 흔들어 깨운 역무원은 조씨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고 판단, 동료를 불러 조씨를 휠체어에 싣고 용산역 승객 대기실로 옮겼다.
조씨의 부하직원 김모 차장은 지각도 하지 않는 조씨가 연락도 없이 회의를 빠지자 계속 조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다가 이날 오후 3시20분쯤에서야 용산역 역무원과 통화했다. 역무원은 "(조씨가) 술에 취해 자고 있으니 와서 데려가라"고 말했다.
오후 4시20분쯤 용산역에 도착한 김 차장은 조씨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떨구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조씨의 입가에는 분비물이 허옇게 말라 붙어 있었고, 손발은 차게 굳어 있었다. 김 차장이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방치할 수 있냐"고 하자 역무원은 그제서야 119에 연락해 구급차를 불렀다. 조씨는 인근 대학 병원으로 후송돼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너무 늦게 왔다"며 "의식이 돌아와도 계속 식물인간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레일은 "당시 역무원들이 조씨에게서 술 냄새가 풍겼고, 코를 골고 자고 있는 모습이어서 20~30분마다 흔들어 깨우며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면서 "조씨의 입가에 분비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조씨의 휴대폰 주소록에 등록된 전화번호가 없어 지인들에게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씨의 가족들과 부하직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조씨 부인은 "(조씨가) 사고 전날 오후 6시 40분쯤 집에 들어와 피곤하다며 일찍 잠들어 7일 오전 회의 참석을 위해 오전 7시 50분쯤 집을 나섰고,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며 "조씨의 가방 안에는 명함이 여러 장 들어 있어 얼마든지 연락이 가능했다"고 반박했다. 김 차장은 조씨의 입가에 묻은 분비물을 119 구급대원이 이송 과정에서 닦아냈다고 말해 코레일의 주장과 달랐다.
조씨의 가족들은 병원에서 "승객을 짐짝처럼 취급하면서 응급조치를 할 시간을 잃어 치료가 불가능해졌다. 그런데도 책임을 면하려고 거짓말로 취객으로 몰아 조씨를 두 번 죽였다"고 하소연했다. 조씨의 부인은 코레일측의 사과와 보상,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