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재발급해달라는데도 한달 넘게 걸린다며 자꾸 만류합니다. 정보가 유출됐는데 교체도 안 해주고 어쩌라는 겁니까."
카드 재발급 신청을 하려고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카드 고객센터를 찾은 주부 최모(58)씨는 결국 재발급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최씨는 "직원이 거듭해서 카드를 바꾸지 말라고 했다"며 "피해가 생기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이름과 연락처 남기면 추후에 연락을 주겠다는 말만 한다"고 전했다.
사상 초유의 개인 금융정보 유출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KB국민ㆍ농협ㆍ롯데카드 3사는 카드 교체비용 부담 때문에 재발급을 줄이는데 급급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미국 JP모건체이스 은행이 한 유통업체가 해킹 당해 고객 정보가 유출되자, 대상이 된 200만장의 카드 모두를 교체해줬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서울 농협은행 직원은 "본사에서 고객들에게 카드교체 자제를 당부하라는 응대 지침이 내려왔다"며 "지침에 따라 고객들에게 되도록 교체하지 말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카드 고객센터에는 '롯데카드는 비밀번호가 유출되지 않았으니 카드를 교체할 필요가 없습니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직장인 이모(33)씨도 "10번 넘게 전화해 겨우 콜센터 상담원과 연결됐는데 교체하면 오래 걸린다고 하고, 당장 카드를 써야 해서 재발급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카드 3사의 재발급 건수는 60만건을 넘어섰다. 일부 농협 지점에서는 체크카드 재발급 비용 1,000원을 받았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되돌려주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카드사들은 유출된 신용정보가 불법 조회되는 것을 막아주는 신용정보보호서비스(월 700~3,300원)를 유료 판매하고 있다. 카드 부정사용을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결제내역 문자서비스(월 300원)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생색을 내더니, 정작 더 필요한 서비스는 돈을 받기로 했다. 이 서비스는 정보 유출 직후 카드사 등이 판촉활동을 해 논란이 되자 중단했지만 어느새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카드사 관계자는 "이 상품은 카드사에서 판매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이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료로 제공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는 비슷한 상품인 금융명의보호서비스(월 1,500원)를 다음달 13일부터 무료로 1년간 제공한다.
한편 카드사들은 피해금액이 커지면 정보유출에 직접 책임이 있는 KCB에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예상되는 고객피해 보상액에다 무료 제공하는 문자메시지 발송비용, 카드 재발급 비용 등을 합치면 구상금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객 피해방지에는 소극적이면서 카드사가 입을 피해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중적 행태가 피해 고객들을 또 한번 분노하게 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사태 수습도 안된 상태에서 구상권부터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카드사의 행태를 또 한번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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