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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못한… 어깨 짓누르는 삶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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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못한… 어깨 짓누르는 삶의 무게

입력
2014.01.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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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밥상 앞에 모였다. 눈에 띄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김치찌개와 굴전 정도다. 그래도 술잔이 돌고 웃음꽃이 흐드러진다. 특별한 거라곤 하나 없는 흔한 저녁자리다. 그러나 그 평범한 순간을 최근 제대로 한번 겪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독립영화 '만찬'은 각박하고 삭막하게 바삐 살아가는 우리의 현주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당신의 삶은 행복합니까?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중심인물은 인철(정의갑)이다. 호기로운 성격의 그는 삶에 거칠 것이 없다. 이혼으로 홀로 아기를 키울 운명에 처한 여동생 경진에게 애를 보육원에 보내라고 다그친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라며 여동생에게 새 삶을 권하는 그이지만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부모님 생활비를 대주고 가족들의 안녕을 다 챙기는 어쩔 수 없는 장남이다. 근근이 버텨내던 그의 삶은 명예퇴직으로 조금씩 무너진다. 실직만으로는 부족한 거 아니냐는 듯 인철의 삶 주변에 잠복해 있던 각종 불행들이 싹을 띄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연들을 품고 있다. 인철 부부는 불임에 시달린다. 경진은 혼자서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키우며 분투한다. 인철의 동생 인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대리운전으로 새벽 길을 달린다. 세 남매의 부모는 노년에 찾아온 궁핍에 눈물을 보인다. 대한민국 평균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각종 당면 문제를 대변한다. 조기 퇴직과 청년실업, 한 부모 가정의 육아 문제, 노인 빈곤 문제 등이 어우러진다. 카메라는 인철과 그의 가족이 겪는 '흔한 불행'을 묵묵히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그리고 넌지시 묻는 듯하다. "국민은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사는데 국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냐?"고.

과거 가족이 다 모인 저녁자리(영화에선 딱 한번 묘사된다)에서 인호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건강만 하시면 돼요"라고 말한다. 자기는 취직을 했고, 남동생은 곧 대학을 졸업하고, 여동생은 시집갈 것이니 더 이상 삶의 무게가 있겠냐는 의미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이 향유했던 짧은 호시절을 상징한다. 정리해고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정년퇴직 시대는 아주 저물고 모든 사회구성원이 무한경쟁에 내몰린 지금 이곳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범법을 저지른 인호와 그의 가족이 행복하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아마 그 바람은 우리 스스로의 삶이 더 불행해지지 않기를, 지금의 불우한 삶이 좀 더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상어'(2005)와 '처음 만난 사람들'(2007)로 독립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김동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을 장식했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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