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가게? 이게 뭡니까?”
21일 오후 2시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청 지하도 상가의 분식집을 찾은 이권수(61)씨는 가게 입구에 붙어있는 ‘미리내’ 간판을 보고 가게 직원에게 물었다. 이씨는 ‘이용한 손님이 미리 금액을 지불하면 나중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나눔가게’라는 설명을 듣고 3,000원짜리 라면을 기부했다. 이씨는 “자선냄비에 기부한 것 외에 별다른 기부를 한 적은 없다”며 “부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범위 내에서 기부를 할 수 있고, 배고픈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다니 돈으로 기부하는 것 보다 더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시설공단은 지난해부터 시청 지하도상가를 ‘나눔실천 상가’로 변화시키기 위해 미리내운동본부와 함께 미리내가게를 추진해왔다. 그리고 이날 시청 연결 통로 인근에 있는 명동칼국수, 카페 옆 분식집, Tree An Cafe 3개 점포가 미리내가게로 새롭게 태어났다.
미리내가게는 영국의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운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게를 이용한 손님이 자신의 요금과 함께 추가 금액을 미리 지불해 놓으면 가게 밖 현판에 금액이나 메뉴를 표시해두고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가게다. 소외된 이웃을 돕자는 취지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나눔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다. 손님 중에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기부를 한다거나, ‘빨간 옷 입은 사람에게만 기부한다’는 조건을 정해 놓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고 한다.
김준호(42ㆍ동서울대학교 교수) 미리내운동본부 대표는 “가게마다 재미있는 방식으로 기부가 이뤄진다”면서 “이처럼 기부에서 재미를 찾고, 나누며 사는 생활이 습관이 되면 나중에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지갑을 열 때도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카페와 분식집을 함께 운영하는 이진영(62) 홍영숙(62) 부부도 이런 취지에 공감해 미리내가게에 참여하게 됐다. 이씨는 “큰 기부가 아닌 적은 돈으로 나누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동참하게 됐다”며 “아직까지는 라면 한 그릇, 커피 한 잔이 전부지만 직원들을 통해 홍보에 힘써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씨도 “세상이 각박하다고 느끼다가도 손님들이 서로 계산하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그들이 온정을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리내가게는 전국에 150여개 점포가 있으며, 서울에는 지난해 5월 고려대 근처 카페 등 7개 점포가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40여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진주 인턴기자(이화여대 불어불문 4)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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