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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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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입력
2014.01.2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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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자유로움에 매료… 26세 때 늦깎이 프랑스 유학유럽 텃세 만만찮았지만 지금은 저를 홍보에 활용고운 목소리 주신 부모님께 감사K팝처럼 재즈도 정부 지원 필요… 국내 뮤지션 위한 무대 확보 절실

미국의 저명한 음악 비평가였던 시드니 핑켈스타인은 자신의 저서 에서 "최초의 재즈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고 했다. 재즈에 대한 정의도 내렸다. "재즈는 살아있으며 창조적이고, 위조품을 허용하지 않는 진짜 청중을 갖고 있다." 어느 음악 장르보다 즉흥성과 변화성이 강한 재즈를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진짜 청중'이란 '마니아'의 다른 표현이다.

재즈는 흑인 음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도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이 세계 재즈 시장을 양분하는 구도 속에 우리나라도 재즈 팬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재즈의 대중화"로 설명한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45)씨는 시쳇말로 '재즈의 대세'다. 그는 한국보다 유럽 등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지난해 3월 공연예술가들에겐'꿈의 무대'인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한국인으론 처음 단독 공연을 했다. 프랑스의 유력 신문 르몽드는 "세계 재즈계가 주목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라고 평했고, 독일의 슈피겔지는"나윤선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기적"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프랑스 재즈 어워드에서 재즈보컬부문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되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국내에선 한 금융그룹의 CF에서 '아리랑'을 불러 유명세를 타게 됐다.

나씨는 최근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주는 제10회 한국이미지상 꽃돌상을 수상했다. '재즈 한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상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데 기여한 개인과 단체, 외국인 등에게 수여하는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휘자 정명훈, 피겨스타 김연아, 가수 싸이 등이 받은 바 있다. 나씨가 재즈 뮤지션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ㆍ예술인으로 우뚝 섰다는 의미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데 딱 19년 걸렸지만 내 재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최고의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며칠 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공연을 봤다. 마술 같은 한 요정이 우리를 홀렸고, 눈물 나게 감동시켰다. 그건 바로 가수 나윤선이었다"고 했다. 유럽 재즈 무대를 평정한 나씨의 활약상이 십분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화대국 프랑스에선 박근혜 대통령 보다 나씨 인지도가 앞선다.

-'경이로운 공연을 할 줄 아는 뮤지션' 같은 여러 수식어들이 붙어 있더군요.

"과분한 칭찬입니다. 더 노력하라는 뜻이겠죠."

재즈는 감미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나윤선 식 재즈'는 입체적이고 변화무쌍하다. 같은 곡이라도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와 분위기로 청중을 압도한다. 최저음부터 최고음까지 자유로이 넘나드는, 때론 현란한 음의 조율은 전매특허다. 재즈 팬들은 그래서 그의 음악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나오나요.

"부모님께 감사해야죠. 제 목소리의 80% 이상은 부모님이 주신 겁니다. 음악을 하셨던 두 분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공연을 보게 됐어요. 은연 중 듣는 훈련이 됐던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재즈를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릴 때 듣는 습관이 쌓인

게 도움이 됐어요."(그의 아버지는 한양대 음대 교수였던 나영수 전

국립합창단 단장, 어머니는 한국 뮤지컬 1세대인 성악가 김미정씨다.)

-연습벌레인가요.

"1주일에 3~4일 공연을 하다 보니 따로 시간 내 연습할 시간이 없어요. 공연과 연습을 동시에 하는 셈이지요. 다만 평소에 습관처럼 흥얼흥얼 하곤 하는데, 이게 목소리를 유연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나요.

"(잠시 머뭇거리다가)일단 올라가기 싫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약간의 무대

공포증이 있어요. 카메라 울렁증도 조금 있고요. 그래서 공연 홍보 같은 불

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TV엔 거의 출연하지 않습니다."

TV에서 나씨 얼굴을 보는 건 쉽지 않다. 방송 매체에 출연하지 않고도 유

럽 재즈계를 석권하고 한국에서도 인기 몰이를 하는 건 쉽지 않을 터. 뛰어

난 음악성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무대 공포증을 이해하는 관객들이 있을까요.

"공연 전엔 많이 떨지만 일단 시작하면 신기하게 몰입하는 편이에요. 무대

올라가면 최고의 상태가 되지요. 무대라는 공간에서 관객들과 하나가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지요. 그래

선지 공연이 끝나면 정말 행복합니다. 어떤 분들은 저의 이런 모습 때문에

'나윤선은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광녀(狂女)가 된다'고 하죠."

공연 시작과 함께 돌변하는 그의 끼가 적나라게 반영된 무대가 지난해 12

월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윈터 재즈' 공연이었다. 국립극장이 처음 재즈 뮤지션에게 단독 공연을 허용한 무대이기도 했다. 그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아코디언 연주가 뱅상 뻬라니, 콘트라 베이스 연주가 시몽 따이유, 거문고 연주가 허윤정, 생황과 피리 연주가 이향희가 함께 한 공연이었지만, 하이라이트는 객석을 압도한 나씨의 목소리였다.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기만성형이다. 대학 졸업 후 일반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오디션을 거쳐 '아침이슬'의 작곡가 겸 가수 김민기가 만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옌볜 처녀 역할을 맡았지만 연기가 서툴러 중

간에 나왔다. 26세 때 뒤늦게 재즈를 배우러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왜 하필 재즈를 선택했나요.

"재즈는 틀에 박힌 음악이 아니에요. 도식적이지 않은 자유의 음악이지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음악입니다. 그런 점이 좋았어요."

뒤늦게 재즈의 묘미에 빠진 나씨는 1995년 유럽 최초의 재즈 스쿨 프랑스 CIM에 들어갔다. 재즈 공부의 출발이었다. CIM을 다니면서도 프랑스 국립음악원 등 2개 학교에도 등록했고, CIM에서 재즈보컬 학사학위를 딴 뒤 2000년엔 동양인 최초로 CIM교수로 임명됐다.

-유럽에서 성공하기까지 텃세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왜 없었겠어요. 프랑스의 유명 재즈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1등 했을 때였어요. 심사위원 만장일치 1등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명이 끝까지 반대했더라고요.'미국 사람도 아닌 동양인이 어떻게 대상을 받을 수 있냐'면서요. 일종의 텃세였지요. 하지만 그 페스티벌은 지금은 저를 홍보용으로 활용하고 있어요.'우리가 나윤선을 키웠다'면서요."

나씨의 주무대는 유럽. 1년에 9개월 가까이 유럽 각 나라를 돌며 공연한다. 공연의 70%는 프랑스에서 이뤄진다. 유럽인들은 'YOUN SUN NAH'라는 영문 이름 석자의 주인공에 감탄하고 주목한다.

-프랑스정부로부터 귀화 제의를 받진 않았나요.

"그런 제의는 없었지만 프랑스가 저를 위해 해준 건 많아요. 하지만 전 각종 인터뷰나 페스티벌 때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얘기합니다.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고, 저에 대한 존중감이기도 하지요."

-'재즈 한류'라고 봐도 되겠네요.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 사이에 도움 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고 있어요. 주로 우리나라 재즈나 국악 연주자 분들을 프랑스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뮤지션을 한국에 데려오기도 하고요. 프랑스 뮤지션의 입 선전이 효과를 많이 보거든요."

그의 공연엔 철칙 하나가 있다. 민요'아리랑'을 우리 말로 반드시 부르는 것이다. 해외 언론은 이런 그를 '아리랑 전도사'로 지칭하기도 한다.

-해외 공연 때마다 아리랑을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와 협연하는 연주자나 관객들이 싫어하면 안 하겠지만 모두 너무 좋아해요. 가사는 몰라도 아리랑에 담긴 소리가 갖는 힘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뮤지션들에게 정부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국악이나 K팝은 정부가 지원하고 있지만 전 단 한번도 지원 받은 적 없어요. 그렇지만 국내 재즈 분야는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재즈 뮤지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무대가 많이 확보돼야 재즈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10시간 연습과 12시간 연습은 큰 차이가 있어요. 해외에서 재즈 공부하고 들어오는 뮤지션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들이 활동할 무대는 너무 없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1년에 몇 차례밖에 안 되는 나씨의 국내 공연은 늘 초만원이고 티켓 구매는 전쟁이다. 새 앨범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어떻게 하면 재즈와 친해질 수 있을까요.

"재즈는 이제 일상의 배경 음악이 됐습니다. 문제는 그게 재즈인지 아닌지 모르고 듣고 있다는 거죠. 재즈 음악을 듣고 싶다면 우선 관련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유명 재즈 뮤지션을 파악하고 그들의 음반을 사서 듣는 게 중요해요. 드럼 버전, 가수 버전, 트럼펫 버전, 색소폰 버전 등 악기들의 연주를 찾아서 들어보면 같은 곡이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걸 느낄 거에요. 중요한 건 습관입니다. 습관을 들인다면 클래식보다 훨씬 가까운 시간 안에 익숙해질 거에요."

인터뷰= 김진각 선임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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