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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양인은 쿵푸하고 흑인은 수다만 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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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양인은 쿵푸하고 흑인은 수다만 떨까?

입력
2014.01.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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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로큰롤), 영화(할리우드), 패션(명품), 음식(패스트푸드). 급격한 세계화 이후 전지구적인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대략 이 네 가지다. 이들은 지역에서 싹터 나온 전통적인 개념의 '문화'라기보다 완벽하게 '상품'이 되어 장벽 없이 유통되고 광범위하게 소비된다.

이중 가장 적극적으로 지구촌 정복에 나서고 있는 문화는 할리우드 영화(또는 미국 시트콤)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전세계 배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정치색을 배제한 사랑과 우정 등 보편적 주제를 다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눈살 찌푸릴 때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시트콤에서 드러나는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도 그 중 하나다. 라틴아메리카인(히스패닉)은 길고 검은 곱슬머리에 올리브색 윤기 있는 피부로 야성미가 넘치고, 아시아인은 왜소한 몸으로 쿵푸를 하며, 흑인은 뚱뚱하고 수다스럽다는 식이다. 인종차별 논란도 심심치 않게 불거진다.

미국 ABC방송의 인기 리얼리티쇼인 '더 배철러'(The Bachelor)는 프로그램 주인공으로 32살 라틴아메리카계 남성을 내세운다. 이 미혼 남성 한 명을 20명의 여자가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 방송중인 SBS의 '짝'과도 비슷한 이 프로그램은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대해 일부 라틴아메리카계 배우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더 배철러가 라틴아메리카계 남성은 축구선수 출신으로 성적 매력이 다분하다는 걸 강조하자 배우들이 그만 좀 하라고 나선 것이다.

영화 '라 밤바'에 출연했던 라틴아메리카계 배우 에사이 모랄레스(52)는 17일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할리우드가 라티노(라틴아메리카인)에 대해 섹시한 이미지만 덧씌우면서 라티노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할리우드는 라티노를 성적매력(hormonal), 신경질적(hysteric), 호전적(hostile), 초라함(humble) 등의 이미지로 구분 짓고 여기에만 맞춰 배역을 준다"면서 "이러다 보니 라티노가 할리우드에서 영웅이나 지도자 같은 배역을 맡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할리우드에서 나타나는 아시아인의 이미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시트콤인 '내가 너희 엄마를 어떻게 만났냐면'(How I Met Your Mother)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얼마 전 방송 중 주인공들이 쿵푸를 배운다며 백인인 주인공이 팔자 수염에 얼굴을 노랗게 칠하고는 중국 전통복장을 입고 나온 것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노란 얼굴과 쿵푸가 무슨 상관이냐?" "동양적(oriental)이라는 말로 모든 아시아인을 희화화했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해당 시트콤을 연출하고 있는 크레이그 토마스는 "우리는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노력이 부족했다"고 사과까지 했다.

할리우드에서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라틴아메리카인이나 동양인과는 경우가 좀 다르다. 흑인은 할리우드 초창기부터 오랜 기간 영화에 등장해오면서 이미지 묘사가 서서히 변해갔다. 노예나 슬럼가 빈민으로만 그려지던 흑인 이미지가 완전히 뒤바뀐 것은 1972년 영화 '더 맨'(The man)에서다. 이 영화에서 흑인 대통령이 처음 등장한 이후 윌 스미스가 영화 '맨 인 블랙'(Man In black)에서, 모건 프리먼이 '딥 임팩트'(deep Impact)에서 인류를 구할 영웅이나 지도자로 묘사됐다. 할리우드에서 앞으로도 흑인이 중요한 배역을 맡는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더 논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의 잔재를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묘사하는 흑인은 뚱뚱하고 수다스러우며 권위적이다. 흑인 남성은 출세한 인물로 그려질 때가 많지만 흑인 여성들은 기껏해야 가정주부이거나 성매매를 위해 빈민가를 맴도는 역할이다. 미디어 비평가 로빈 매기는 "영화에서 흑인 여성이라면 커다란 소파에 앉아 헐렁한 긴 원피스를 입고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수다 떠는 뚱뚱한 사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며 "그들 대부분은 남성에 의존적인 나약한 인물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고 CNN은 전했다.

할리우드에서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이 백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출자나 프로듀서, 작가 등에 다양한 인종이 포진해야 문화적 다양성이 생겨나고 인종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으로 다양한 인종의 시청자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가 여러 문화권을 이해하는데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미디어비평가 브래드 밸리는 "할리우드는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방송을 위한 일종의 양념으로 써서는 안 된다"며 "할리우드가 인종에 투사하는 이미지가 전세계에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CNN은 덧붙였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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