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방학은 어떤 의미일까. 학창시절을 돌이켜보아 방학을 기다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 대학생들조차 종강은 방학의 의미로 더 기다려지는 때다.
그런데 방학, 이 매력적인 용어가 사라지고 있다. 초·중등학생만 되어도 방학은 또 다른 학업의 연장으로 더 이상 방학이 아닌 요즘. 잠시 ‘학업을 놓는다’는 ‘방학’의 의미가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시기의 유아들에게는 사회적 요구로 공공연히 온전한 방학을 뺏기고 있다.
방학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겨울(여름) 방학(放學)은 추위(더위)로 학업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 기간에 학교를 쉬는 기간을 말하며, 국가와 지역에 따라 6주~3개월 정도의 휴식기간이 주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7월에서 8월, 12월 하순에서 1월 하순까지를 방학 기간으로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유아교육기관의 방학은 6주에서 3개월은커녕 1주일에서 많아야 2, 3주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방학도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누구를 위한 아우성이며 비판인가를 곰곰 살펴보고 개선할 때다. 진화를 위한 인류의 노력이 이 분야에서는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엄마·아빠 기다리느라 자는 시간이 늦은 요즘의 아이들 중에 체질상 아침형 아이가 아니라면 눈 비비고 억지로 일어나 이런저런 꾸중까지 들으며 아침 등원준비를 한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라면 아침 일곱 시 반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등원을 하니 아이도 엄마도 아침이 쉽지 않다.
엄마가 여유 있게 아침준비를 도와주는 전업맘의 아이도 아침이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 아이들에게도 일상의 빡빡함이 있다. 외출복 입고 많게는 일곱 시 반에서 저녁 일곱 시 반까지 12시간을 유아교육기관에서 보내는 유아들은 중고등학교 학생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유아교육기관)에서 ‘교육계획안’대로 움직여야 한다.
이 아이들도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기는 마찬가지고, 학업의 능률이 오르지 않을 수 있으므로 휴식시간의 방학이 주어져야 한다.
푸른 산이 부른다 우리들을 / 푸른 숲이 부른다 우리들을 / 산딸기 따러가자 산으로 가자 / 매미채 둘러메고 숲으로 가자 - 강소천 동요 中
산딸기를 따러 가든 매미 잡으러 숲으로 가든 아이들은 숲으로, 들로, 바다로, 박물관으로… 일상의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부모도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즐거움을 이 시기에 아이와 마음껏 누려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는 금방 지나간다. 이 시기에 부모로 하여금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많이 주어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할수록 부모 노릇도 즐겁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이도 부모도 힘들다. 적어도 열 살 이내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직장에서도 우대해줘야 한다. 그것이 사람 키우는 정책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사람’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랴.
어린이집이 방학을 해서, 아이들 맡길 데가 없어 출근전쟁을 하는 엄마들의 안쓰러운 사연이 신문과 인터넷 기사에 오를 때마다 안타깝다. “유치원이 며칠간 방학을 한다더라, 어린이집이 일주일이나 방학을 해서 워킹맘은 눈물 나는 출근전쟁을 해야 한다”라는 것만 부각되는 현실이라면 이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시각이고 현실이다.
아이들의 표현대로 ‘꿈같은 방학’이다 어른들의 생활, 어른들의 논리에 밀려 아이들의 꿈같은 시간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연차도 방학이나 활용해야 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도 생각해야 한다. 방학 며칠 하는 동안 죄인 같은 마음, 심지어 어린이집은 방학하지 말라는 공공연한 압력에 ‘휴가’라는 말을 써야 하는 현실이란다. 그렇다면 교사는 언제 휴가 한 번 가질 수 있을까. 그들도 성스러운 노동을 하는 근로자다. 그들도 다른 직장인만큼은 휴가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심신으로 교육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휴가를 쓰려면 주중에 담임이 휴가를 사용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반과 합반을 해야 한다. 어느 부모가 우리 아이가 담임 없는 상황에서 다른 반과 섞여서 합반하는 것을 원할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조리사도 운전기사도 휴가가 필요하지만 언감생심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궁여지책으로 눈치 보며 며칠의 방학을 이용해서 교직원들의 휴가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여지없이 언론은 그것을 두들겨댄다.
‘아이 맡길 데가 없어진 엄마들…….’ 유아교육기관은 순식간에 엄마들을 불편하게 만든 죄인이 된다. 방학을 왜 눈치 보며 하게 만드는가. 왜 죄인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가. 죄인이 어떻게 티 없이 맑고 천사 같은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방학을 허락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들에게, 교사들에게 모두 합법적이고 즐거운 방학이 되어야 한다. 눈치 보며 하는 방학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즐겁고 특별한 방학, 엄마들에게는 誌?아이들과 가고 싶었던 곳을 가보며 아이와 온전한 시간을 함께하는 방학, 교사들에게도 재충전과 휴식, 연수를 통해 거듭나는 시간의 방학이 필요하다.
방학하는 유아교육기관에만 초점을 맞춰 무슨 문제라도 있는 양 다루지 말고, 부모들이 아이들의 방학에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은 스스로가 시간을 계획해서 실행할 수 있는 발달기가 아니므로 열 살 이하(초등 저학년)의 자녀를 둔 워킹맘에게 육아 휴가를 대폭 고려하고 이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합법적인 방학이 유아교육기관에 이르러서는 불법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맡아줄 곳이 없어서…….”라는 문구가 아이를 위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이 입장을 방치한 변론이다. 아이들도 놀고 싶다. 아무리 유아교육기관의 프로그램이 훌륭해도 아무리 초·중등 교육과정이 우수해도, 아이들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그 황홀한 즐거움을 좋아한다. 어른들의 입장과 편리를 위해 아이들의 즐거운 성장을 방해하지 말자. 특히 초등 고학년 이상만 되어도 아이들에게 방학은 더 이상 방학다운 즐거운 방학이 아니다.
유초등기 저학년 시기에 온전한 방학을 주어야 한다. 이때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아이들의 성장을 격려는 못 할망정 방해하고 있는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교사에게도, 방학을 허하라.
글 : 문학박사, 부모교육전문가 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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