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KB국민, NH농협, 롯데 등 카드 3사 사장은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책임을 통감하고 있지만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정보 유출로 성난 고객들에게 사죄하는 자리였다.
그 시간, 정부의 움직임은 긴박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신제윤 금융위원장과의 통화에서 "다시는 누구도 이런 짓을 저지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정보 유출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관련자의 엄중 문책과 해당 카드사의 책임 여부를 소상히 밝혀 금융사들의 안이한 보안 의식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도 "유출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후 2시, 국회에서는 정보 유출 사태 관련 긴급 당정회의가 열렸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참석한 신 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향해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했는데도 관련 카드회사가 주말 근무도 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금융사 경영진들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불과 3시간여 뒤. KB금융은 그룹 경영진과 임원들이 모두 임영록 회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사표 제출자는 KB금융의 집행임원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비롯한 부행장급 이상 임원, 그리고 심재오 국민카드 사장과 임원 등 무려 27명에 달했다. 임 회장은 "사태 수습이 우선이며, 그 이후 책임질 일이 있는 분은 선별적으로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NH농협카드 손경익 분사장도 사퇴 의사를 밝혔고, 곧 이어 자사 직원이 카드사 정보를 빼낸 개인신용평가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김상득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 전원이 사표를 냈다. 마지막으로 롯데카드 박상훈 사장과 경영진 9명도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금융사 임원들이 '사죄'에서 '줄 사퇴'로 급선회한 데는 '여론 압박 →정치권 압박 →금융당국 압박'의 연쇄작용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최악의 정보유출로 여론이 나빠지니까 정치권이 압박을 했고, 여기에 금융당국이 금융사를 상대로 조기 사퇴를 종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경영진 줄사퇴는 불가피했다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정서다. 하지만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임원진까지 집단 사표를 내도록 종용하는 것은 자신들을 향해 조여오는 압박을 잠재우기 위한 금융당국의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터져 나온다. 한 금융사 임원은 "잘못을 했으니 책임은 져야겠지만, 무차별적인 여론몰이로 임원이 모두 사표를 제출하면 이번 사태는 누가 책임지고 수습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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