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주민 이모(46·여)씨는 사시사철 공기청정기를 틀어놓는다.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고 에어컨으로 버틴다. 주변 공장에서 날아오는 분진 때문이다.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필터는 며칠만 지나도 잿빛 먼지로 가득 차 제 기능을 못할 정도다.
이씨가 살고 있는 거물대리에 공장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정부가 부족한 주택과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도시용지를 늘리고 민간 토지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준농림제를 시행하면서 조금씩 증가한 공장 숫자는 2008~2009년 공장 입지 규제가 완화되면서 급속히 늘었다.
김포시에 등록된 공장 수는 지난달 기준으로 5,063곳에 이른다. 미등록을 포함하면 약 7,000곳에 달하고 등록 공장의 98.2%(4,973곳)는 환경관리에 취약한 소기업(종사자 50인 미만)이다.
환경오염배출시설도 공장과 함께 덩달아 늘었다. 김포시의 환경오염배출시설은 1994년 536곳에서 2000년 1,992곳, 2010년 4,008곳으로 늘었다. 현재는 5,000곳이 넘는다.
이러자 공장이 주거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넘어 주택과 담을 맞대거나 공장에 포위 당하는 주택까지 생겨났고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만 갔다. 중금속 등 유해물질은 주민 건강과 농작물에 해를 끼쳤다. 재산권 침해, 주민간 갈등도 불거졌다. 거물대리에서 시작된 문제는 인근 초원지리와 가현리, 월곶면 고양리와 갈산리까지 확대됐다.
고양2리 이장 안명호(65)씨는 "공장 난립에 따른 부작용이 거물대리에서 제기됐는데도 불구하고 고양2리에 버젓이 주물공장 허가가 났다"며 "주민 의견을 무시하는 막무가내 허가가 조용한 시골마을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 난립으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줄일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장 집단화, 공장 개별 입지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을 꼽고 있다.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김포시 비도시지역 개발현황 및 관리방안'에 따르면 김포 비도시지역의 개별 입지는 1995년 이후 급격하게 늘었다.
반 교수는 "국토계획법의 도시 편향적 자세와 비도시지역에 대한 종합관리계획 부재, 규제 완화에 대한 요구 증가가 난개발을 불러왔다"며 "개발행위를 제한하고 주민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공장 난립 심화를 우려하며 오염물질 배출 등 사후관리가 가능한 산업단지로의 공장 이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공장지역에 대한 체계적 정비방안 마련도 주문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0년 발표한 '개별입지 공장의 애로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김포시 등 경기도의 개별 입지 공장 등록 수는 2005년부터 4년간 57.9%가 늘었다. 개별 입지 공장 비중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75.3%였다.
환경단체는 공장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자치단체가 세수 확보를 위해 무분별하게 공장을 유치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단체 '환경정의' 김홍철 사무처장은 "공장 혼재지역에 대한 관리 대책이나 환경 관련 법 위반 업체의 단속 및 후속조치의 실효성 확보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생색내기식 공장 집단화에 나서고 있다. 김포시는 거물대리 일대 공장들을 대곶면 대명리 일대 28만㎡에 조성 중인 일반산단으로 이전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입주 대상이 30곳에 불과하다.
정하영 김포시의원은 "환경오염배출시설 수를 감안할 때 대곶산단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공장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 공장들의 입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집단화 지역 추가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4월부터 본격 시작될 거물대리와 초원지리 환경피해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김포시가 지난해 10월부터 추진 중인 환경오염물질배출시설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방침이 추진력을 잃을 우려도 있다. 역학조사에서 주민들의 암이나 호흡기질환 발병에 주변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의 검사에서도 공장 폐기물과 토양·지하수 오염간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었다.
역학조사를 수행하고 있는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는 "올 4월부터 2차 역학조사에 나설 예정으로, 결과는 김포시와 공대위 측에서 발표할 것"이라면서 "1차 역학조사에서 일부지만 (공장 오염물질과 주민·농작물간 관련된) 의미 있는 결과가 있었다"고 말해 결과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공장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거물대리 주물업체 D기공 관계자는 "적정 용량의 2.5배에 달하는 집진시설 등 환경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환경피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주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에 따른 금전적 피해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김포시의 무분별한 공장 허가가 주민뿐만 아니라 결국 공장에도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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