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감독·배우 참여했지만 3D·특수효과·캐릭터 디자인 우리가"美·캐나다 극장 3000여곳서 개봉 첫 주 매출만 2000만달러 '대박'심형래 감독의 '디워' 기록 경신 "동물 털·물·불·안개 표현에 '사실적 묘사' 호평 받아 기뻐차기작 우주 서유기로 내년 미국시장 또 한번 두드릴 것"
29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넛잡: 땅콩 도둑들'의 감독은 피터 레페니오티스. 캐나다 출신의 레피니오티스 감독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볼츠와 블립'(2012)을 연출했다.
영어 목소리 연기는 '테이큰' 등으로 유명한 리암 니슨과 '미이라'시리즈의 브렌든 프레이저,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캐서린 헤이글 등이 담당했다. 할리우드 A급 배우들이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은행을 노리는 인간 패거리와 그들의 땅콩을 훔치려는 다람쥐들의 대소동을 그렸다.
'넛잡'의 외피만 보면 영락없는 할리우드 3D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넛잡'의 기획과 제작은 한국회사 레드로버가 맡았다. 특수효과와 3D, 캐릭터 디자인 등 주요 작업에 한국 스태프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국내 창업투자사들이 주요 투자자다. 한국이 주도하고 할리우드 인력이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인 셈이다.
20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하회진 레드로버 대표는 "한국시장에선 애니메이션이 수익을 내기 힘들어 애초부터 서구인의 눈에 맞춰 세계시장을 노린 기획"이라고 밝혔다.
'넛잡'은 지난 17일 미국 영화관 3,427곳에서 개봉했다. 한국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로는 최고 수치다. 첫 주 매출은 2,0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보유한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최종 1,098만 달러)를 단번에 갈아치웠다. 하 대표는 "흥행 성적이 어찌 나올까 초조해 주말에 한숨도 못 잤다"며 "예상했던 결과가 나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시장에서만 8,000만 달러 매출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넛잡'의 제작비(4,000만 달러) 두 배에 해당하는 돈을 미국에서만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넛잡'은 120개국과 수출계약을 맺어 더 많은 수익이 예상된다. 수익만 따져보면 하 대표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다. 하 대표는 "제작비가 4,000만 달러지만 미국에서 만들었으면 8,000만 달러가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공돌이' 하 대표가 2004년 설립한 레드로버는 당초 3D모니터를 개발하는 회사였다. 3D 기술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어쩌다 콘텐츠 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3D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 애니메이션 감독 앤드류 나이트('미녀와 야수2')가 할리우드 쪽에 다리를 놓으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본격 뛰어들었다. 캐나다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툰박스애니메이션엔터테인먼트와 제휴를 맺은 뒤 '볼츠와 블립'의 TV시리즈와 영화판을 각각 만들었다. 하 대표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더 제작하려는 찰나 비행기에서 '이탈리안 잡'을 봤고 이를 바탕으로 '넛잡'의 초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넛잡'의 출발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다. 글로벌 프로젝트의 전례가 없어 국내 투자자의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창투사 직원을 만날 때마다 "대기업도 못한 일을 당신들이 어떻게…"라는 식의 핀잔을 듣곤 했다. 하 대표는 "북미시장 배급사가 확정되기까지 제 별명이 '양치기 소년'이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미국 개봉은 정말 경이적인 일이라 자부한다"고 했다. "한국인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못했을 일"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애니메이션의 질을 좋게 평가 받아 정말 기분 좋다"고 말했다. "동물의 털이나 물, 불, 안개 등이 표현하기 아주 힘든데 선진시장에서 정말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차기작도 벌써 정해졌다. '스파크'로 하 대표는 "우주 서유기"라 표현했다. 올 10월 완성해 내년 미국 시장 등을 또 두드린다. '넛잡2'도 벌써 출발선에 섰다. "북미 배급을 담당한 오픈로드는 벌써부터 2016년 지금과 똑 같은 시기에 개봉하자는 말을 한다"고 하 대표는 전했다.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처럼 저희가 할리우드 진출의 좋은 선례가 됐으면 좋겠어요. 10년 후엔 홍길동과 장화홍련 등 우리의 이야기의 세계화도 추진해 보려고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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