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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월 21일] 설, 그리고 포매팅

입력
2014.01.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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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열흘 앞인데, 때마침 큰 눈이 내려 전국이 순백이다. 설의 어원을 두고 아직 학계의 정설은 없지만,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유래를 찾는 학자들이 많다. 설을 한자로는 '신일(愼日)', 즉 '삼가고 조심하는 날' 이라고 부른다. 해가 바뀌면서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여 근신(謹愼)하라는 의미일 터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첫 번째 맞는 설이다. 지난 한 해 우리 정치권은 항용 그러해왔던 '정쟁'이 아닌 '전쟁'을 치렀다. 안타까운 점은 그 많은 전투 꺼리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소되기는커녕 확전 가능성만 커진 채 새해를 맞는다는 점이다. 각 정파의 명운을 건 지방선거와 미니총선급 국회의원 재ㆍ보선 등 큰 선거를 세 번이나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심판론과 대선불복-종북논쟁은 서로를 무찌르기 위해 더없이 좋은 소재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 정부 내내 '5년 전쟁'이 지속될 전망이다. 새로이 시작되는 한 해를 근신은 못할 망정, 끼리끼리의 동종교배를 강화하며 대결 의지만 불사를 것인가. 1년 전쟁으로 매듭짓고 출구를 찾아야 한다.

아직도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느냐고 타박할 사람이 있겠지만, 국민 대통합과 경제민주화, 정치ㆍ사회적 민주성 확대, 정권 정통성 시비 종식, 상식과 원칙의 회복 등은 어느 순간에도, 어느 진영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그 가치는 이미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 그 합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인적 희생과 수 십 년 시간이라는 소중한 '자원'을 바쳤다. 그 가치들은 어느 한 진영의 배타적 소유물이 아니다. 어느 진영이 득세하면 무시해도 좋은 가변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른바 '공동선'이다.

대통령 직선제 사상 처음으로 과반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그 같은 가치나 목표를 추구하기에 이전 어느 정권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한 해는 참담했다. 어느 쪽에 그 책임이 더 많은지를 따지기는 복잡할뿐더러 정확히 계량해낼 저울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집권 1년을 채우기도 전에 "대통령 하야" 요구가 터져 나온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그 불행을 멈추게 할 일차적 책무는 두말할 필요 없이 국정 담임 세력에게 있다. 해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소통이다. 소통은 기자회견 한두 번에, 청와대로 사람들 불러모아 밥 먹고 사진 찍는 게 아니다. 권위를 벗어 던지고, 표를 호소하던 때의 겸손함으로 돌아가는 게 그 시작이다. 국토를 망쳤다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논란'은 차라리 애교일 수 있다. 피땀으로 일궈온 공동선의 수호 여부가 기로에 서 있다. 말 그대로 '역사적 책임'이 현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무섭지 아니한가.

컴퓨터를 쓰다 보면 프로그램들끼리 충돌하거나 조각난 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파일들이 쌓인다. 컴퓨터는 버벅거려 속도가 뚝 떨어지거나, 아예 멈춰버리기도 한다. 컴퓨터기술 밝은 사람 불러다가 이리저리 해봐도 안 고쳐지면, 마지막 수단으로 포매팅이라는 것을 한다. 불도저로 울퉁불퉁한 땅을 밀어 평평하게 고른 후 새집을 짓듯, 컴퓨터를 청소하고 텅 빈 상태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다시 까는 것이다. 포매팅할 때 버려서는 안 될 프로그램이나 자료는 따로 한곳에 모아두고 나머지는 다 지워버린다.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보관할지 고르는 것이 포매팅 이후 컴퓨터의 정상 작동 여부를 결정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초당적 국정운영을 내세웠지만, 실은 특정 정파의 수장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다가오는 큰 선거들에서 정권 심판론이 이슈가 될 터인데, 청와대가 선거용 묘수 찾기에 골몰한다면, 전쟁 같은 정쟁은 끝날 수 없다. 정치의 반은 타이밍이고 나머지 반은 정서를 헤아리는 것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고, 정서를 헤아리지 못하면 배가 가라앉는다. 고장 난 컴퓨터 붙잡고 짜증 내면서 중요한 자료 날리거나 버벅대며 시간 낭비할 일 아니다. 국정 전반을 포매팅할 때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 것인가. 답은 대통령직 수락연설문에 이미 나와 있다.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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