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오리 군무를 촬영하기 위해 몰래 통제선을 몰래 넘어오는 사진 애호가들을 막아달라."
최근 철새 도래지에 파견 나간 농림축산식품부 직원들은 다급한 문자를 본부로 속속 보내왔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철새 추적도 중요하지만, 출입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철새 도래지를 찾아오는 사람들부터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맘때 가창오리 떼가 하늘에서 무리를 지어 추는 군무는 환상적이어서 멀리서 철새 탐방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개중엔 통제 너머까지 숨어 들어와 사진을 찍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인식 탓에 AI 바이러스를 신발에 묻혀나갈 위험성이 크다.
철새인 가창오리가 이번 AI의 발병원인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철새 도래지 주변 단속에 나섰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10만~20만 마리가 떼지어 다니는 가창오리 향방을 쫓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한데, 관광객마저 통제가 안 된다면 사태 해결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장 직원들은 "반경 10㎞나 되는 지역을 모두 감시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철새 도래지 출입통제 조치에 나섰다.
그나마 가창오리의 이동경로는 예측 가능하다. 가창오리의 국내 북상 한계선은 충남 당진의 삽교호다. 20일 환경부에 따르면 시베리아 동부와 사할린 북부 등에 살던 가창오리 20만 마리는 지난해 11월 영암호(전남 영암군)에 들어와, 12월부터 동림저수지(전북 고창군)와 금강호(전북 군산시)에 머물고 있다. 현 서식지에 먹이가 풍부하다면 계속 눌러있다 북쪽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지만, 3월쯤 삽교호로 이동해 잠시 머무른 뒤 러시아로 돌아갈 수도 있다. 몇몇 작은 무리는 충남 서산시 간월호나 전북 북부 만경강 등에 머물기도 하는데, 큰 무리는 삽교호를 국내 마지막 경유지로 삼는 게 보통이다.
땅에 떨어진 이들의 분변 속 바이러스가 다양한 경로로 닭 오리 등 가금류에 퍼지는 게 AI 감염의 주요 통로다. 실제 국내에서 발생한 4번의 AI 중 가장 피해가 컸던 2008년 봄에도 철새가 북상하면서 AI를 퍼뜨린 것으로 밝혀졌다. 즉 가창오리가 한반도를 떠나는 3월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농장이나 이동차량이 아닌 만큼 방역 허점도 그만큼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방역당국은 전국 주요 철새 도래지 37곳에 대한 야생 조류 분변 수거 검사 확대(1만→1만7,000건), 주변 농가 방역 조치 강화 등을 통해 철새들을 최대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관광객 등이 얼마나 방역당국의 통제를 잘 따라주느냐가 AI 확산을 막는데 관건이 될 전망이다. AI 바이러스는 영상 4도에서 35일이나 생존이 가능하고, 먼지에 붙어 있는 바이러스도 공기 중에서 14일간 살아있다. 잠깐 사진 찍으려다 신발이나 옷에 묻혀온 철새의 분변이 전국적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강신영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철새들이 날아다니면서 분변을 배설하니까 완벽한 방역은 사실상 어렵다"라며 "추운 날씨에 바이러스가 안정돼 있어 상황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 발병한 H5N8형의 정체를 밝히는 일도 숙제다. 방역당국은 AI에 내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창오리가 집단 폐사했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AI 유형보다 치사율이 높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의 얘기는 다르다. 김기석 경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야생 조류가 감염돼 떼죽음을 당할 정도면 병원성이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한다"라며 "위험성은 최종적으로 실험실에서 유전자검사를 거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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