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말. LG전자 백선필 스마트TV 상품기획팀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연구소(SVL)로부터 파격적 제안을 받는다. 스마트 TV 새 제품에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집어 넣어보자는 것. LG전자 강남 R&D센터에서 기자와 만난 백 팀장은 "새 TV의 포장을 뜯어서 처음 켤 때 '빈 버드'라는 이름의 귀여운 새가 등장해 가장 어렵고 지겨운 셋팅 작업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도와주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면서 "TV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서 이를 받아들일지를 놓고 회사 전체가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LG전자는 지난해 2월 HP로부터 '웹OS' 연구소를 인수했다. 웹OS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운영체제로 PDA 회사인 팜사에서 개발했고, 2010년 HP가 인수했다. HP는 2011년 웹0S를 탑재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선보였다. 웹OS연구소는 인수 후 SVL로 명칭이 바뀌었다.
하드웨어(TV)를 만드는 LG전자가 굳이 소프트웨어 그것도 OS회사를 인수한 건 차별화된 스마트 TV OS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TV면 몰라도, 적어도 스마트TV라면 OS경쟁력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수와 동시에 LG전자의 서울과 SVL 연구진이 공동 개발을 시작했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시도를 통해 판을 바꿔야 한다는 게 공동의 목표였다.
그러나 첩첩산중이었다. 거리, 시차, 언어 장벽은 적응하면 될 일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실리콘밸리 새 식구들이 'TV 문외한' 들이라는 점이었다. 이강원 스마트TV 소프트웨어 개발팀장은 "모바일OS 개발자들이다 보니 웹OS로 TV를 만들겠다는 시도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스마트TV에는 구글 안드로이드OS가 탑재됐다"며 "안드로이드 같은 검증된 OS를 넣는데도 2년 넘는 시간이 걸린 만큼 웹OS 작업이 신속히 될지 의구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 본사는 곧바로 SVL의 연구 인력 100여 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공장 등을 돌며 TV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부시켰다. 아울러 웹OS 프로젝트는 LG전자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다행히 TV는 시청자가 좀 더 간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향점은 같았다. 그 고민을 실현하기 위해 LG전자 TV관련 상품기획, 연구개발, 사용자환경(UX) 등 핵심 연구진은 새 제품에 들어갈 기능을 놓고 사상 첫 '끝장 토론'까지 벌였다. 이 팀장은 "무조건 기능이 많아야 좋다는 생각을 버리고 꼭 필요한 기능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게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여러 SNS 들을 한 데 모아놓은 '소셜센터' 등 기존 TV의 기능 중 수십 개를 과감히 뺐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고 간단한 TV'를 실현할 방식을 놓고 한-미 연구진의 의견차가 컸다. 대표적인 것이 '빈 버드'였다. 서울에선 '장난스럽다' 는 부정적 의견과 '과감하게 바꿔보자' 는 긍정적 의견이 맞붙었다. 백 팀장은 "이왕이면 파격적이고 혁신적으로 해보자는 뜻에서 빈 버드를 채택했다"며 "세계 모든 문화와 종교를 망라해 거부감이 가장 적은 동물은 바로 새"라고 말했다.
웹OS를 얹은 TV개발은 속도를 냈다. 그리고 채 1년도 안 돼 이달 초 미 라스베이거스 전자박람회(CES)에서 빈 버드를 앞세운 새 스마트 TV가 첫 선을 보였다.
현장 반응은 좋았다. 신선하고 귀여운 새 캐릭터 덕분에 친근하다는 평이 많았고, 첫 화면의 아이콘 수를 줄인 것도 호평이었다. 빈 버드가 등장하는 LG전자의 스마트 TV는 올 상반기 중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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