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딱 하루였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뭔가를 한 시간이다. 첫 반응은 기민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불과 3시간여 만에 정부 대변인 자격으로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항의 성명을 내 놨다.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도 당일 구라이 다카시 주한일본대사대리를 초치,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무라야마 담화(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성명)를 일본의 공식 입장으로 믿고 한일관계를 이어왔는데 일본에서 자꾸 그것을 부정하는 언행이 나오고 있다"고 한 것은 아베 총리를 지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정홍원 국무총리도 새해 인사 차 기자실을 들른 자리에서 일본 우익 정치인을 당랑거철(螳螂拒轍)로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 차원에서 정색을 하고 비판한 게 아니라 우회적 형식의 간헐적인 불만 표시에 더 가까웠다.
반면 중국은 달랐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중국은 한 달이 다 되가는 지금도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국제적인 비판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참배 당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기테라 마사토 주중일본대사를 불러 "일본이 도발한다면 중국은 끝까지 갈 것"이라고 한 것은 선전포고였다. 중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이날 "아베 총리가 가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난징대학살 기념관"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여기까진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중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먼저 류옌둥(劉延東) 부총리가 중일우호의원연맹과의 접견을 취소하는 등 양국간 우호 단체 교류를 전격 중단시켰다. 양제츠 국무위원은 "일본은 역사의 실패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이 부장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러시아 독일 등에 전화를 걸어 일본을 강력 비판했고, 이후 외국 지도자를 만날 때도 이를 화두로 꺼냈다. 중국 외교부도 정례 기자회견에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본의 우익화를 성토하고 있다. 전 세계 각국에 파견된 중국 대사 중 이미 30여명도 경쟁하듯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와 기고 등을 통해 일본의 도발을 고발했다. 인해전술이다.
인민일보를 비롯, 주요 관영 언론들도 연일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학자들도 동원되고 있다. 지린(吉林)성 문서기록소는 일본 731부대의 생체 실험 의혹 사진과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폭로했다. 지난주엔 랴오닝(遼寧)성 정부가 외국 기자들을 선양(瀋陽)9ㆍ18(만주사변)역사박물관과 일본군이 주민 3,000명을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한 푸순(撫順) 핑딩산(平頂山) 학살 기념관 현장으로 초청했다. 랴오닝성 문서기록소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주도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난징대학살 당시 특무반을 파견,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까지 공개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첫 피해자이면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민족이다. 중국도 절반에 가까운 국토를 점령당했지만 나라를 통째로 뺏기진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베 총리의 행보에 더 분노해야 하는 것은 중국보단 우리다. 그런데 중국은 한 달 가까이 이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국론 통일과 자강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반면 우린 단 하루 떠들다 벌써 잊은 형국이다. 오히려 중국이 주연이고 우리는 조연이 됐다.
120년 전 우린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 국토에서 전쟁을 벌이는 데도 마치 구경꾼처럼 꿀 먹은 벙어리였다. 제대로 저항 한번 못 해본 채 식민지로 전락한 것도 불과 100여년 전이다. 빠르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큰 강점이다. 그러나 역사를 잊는 데도 빠르다면 그건 큰 병이다. 단군 이래 가장 잘 산다는 21세기 대한민국이라면 이젠 역사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공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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