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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악취 20년 시달렸는데… 공장 좀 그만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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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악취 20년 시달렸는데… 공장 좀 그만 세워라"

입력
2014.01.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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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경기 김포시 월곶면 고양2리. 좁은 도로를 따라 늘어선 공장들과 군 부대를 지나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빈 건물 외벽에 내걸린'주물공장 결사 반대!'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옆에는 J금속, N케미칼 등 공장 20여 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우뚝 서 있었다. 75가구에 200여명이 인삼, 매실 등을 키우며 살고 있던 조용한 농촌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물공장을 포함해 금속·목재·석유화학 공장 20여 곳이 모여있는 김포상마산업단지와 100여 곳이 넘는 중소공장들로 둘러싸인 이곳 주민들은 최근 주물업체인 S금속 등 4개 업체의 공장 설립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요구를 거부한 김포시를 상대로 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비용 300만원은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앞서 김포시는 공장들이 환경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는 주민 반대에도 불구,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2년 7월 이들 공장의 설립을 승인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주민들의 공장 허가 취소요구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주민들은 신규 공장이 가동될 경우 20여 년간 상마산단에서 내뿜는 분진, 소음 등에 시달렸던 환경이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신규 공장과 상마산단은 마을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자리잡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 이여은(55)씨는 "(집진시설 가동비용을 아끼려) 공장들이 굴뚝이 안 보이는 밤이면 오히려 붉을 밝히고 기계를 돌려 분진, 악취 등을 내보낸다"면서 "아침에 보면 비닐하우스에 먼지가 내려 앉아 시커멓게 되는데 김포시는 '공해물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교과서적인 답변뿐"이라고 말했다.

주민 이춘선(72)씨는 "최근 몇 년 새 소음과 분진, 악취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됐다"며 "인근 군 부대 장병들마저 야간 근무를 선 뒤에는 머리가 아파 약을 타 먹는다고 하는데 젊은 장병들이 병을 안고 제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양2리에서 차로 20여분가량 떨어진 대곶면 거물대리. 크고 작은 공장들 사이로 주택과 교회, 식당 등이 들어서 있어 흡사 마을이라기보다는 산업단지처럼 보였다. 경기도주물공업협동조합측도 "거물대리의 경우 집단거주지와 공장들이 산재해 있어 (공장 입지로) 부적합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주물공장과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거물대리의 한 주택 옥상에는 잿빛 먼지가 두껍게 내려 앉아 있었다. 비어있는 2층 거실바닥과 부엌에도 먼지가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집주인이자 거물대리 환경피해 대책위원장인 김의균(51)씨가 손바닥으로 거실바닥을 쓸자 시커먼 먼지가 묻어났다. 먼지에 자석을 갖다 대자 철 가루도 붙었다. 보일러실 등 사방이 막혀있는 곳에도 먼지가 가득했다. 지난해 3~4월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등 2곳의 분석 결과 옥상 먼지에선 니켈, 납, 비소, 카드뮴 등 발암성 물질이 검출됐다.

김씨는 "주민들 소변에서 니켈이 일반인 기준(5ug/L)보다 많게는 8배 높게 나오고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의 대기 중 중금속 측정 결과 납, 크롬, 망간 등이 나왔음에도 김포시가 후속 조치 없이 주민들을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김포시 주민들은 무분별한 공장 난립에 따른 건강상·재산상 피해를 수년째 호소하고 있지만 빠른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월곶면 고양2리와 갈산리, 대곶면 거물대리와 초원지리 등 김포시 4개리 주민들과 환경단체 '환경정의'가 구성한 '김포시 환경피해 공동대책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 지역의 환경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은 5,149곳에 달한다. 미등록 공장을 포함하면 7,000곳에 이른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이 2,094곳, 수질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이 533곳, 소음·진동 배출사업장이 2,220곳 등이다. 주물공장도 147곳에 달한다.

공대위는 2008년 공장 입지 규제 등이 완화되면서 김포시의 공장 숫자가 크게 늘어난 이후 거물대리(35가구 76명)에서만 7명이 암에 걸려 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곳 암 사망률이 전국 평균(인구 1만명당 14명)에 비해 20배 이상 높은 것은 무분별한 공장 난립 때문이라는 게 공대위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포시는 지난해 10월부터 거물대리에 대한 환경역학조사를 벌이고 민관공동대책위를 꾸려 대책 마련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중금속 노출 정도(혈액·소변 검사),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과 암과의 인과관계 등을 규명할 2단계 역학조사는 내년 4월에야 완료될 예정이라 후속 대책 마련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공대위 관계자는 "서울과 가깝고 가격이 싼데다 규제를 덜 받는 땅이 많아 공장들이 몰리고 있다"며 "기업 편의를 봐주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자치단체의 세수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공장 유치가 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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