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회어린이합창단 34년 이끌며특유의 예쁜 소리로세계 속에 한국합창 미학 각인시켜아들딸 손녀까지 DNA 대물림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가족들과 코러스센터 운영하며새롭고 한국적인 소리 찾기 열정70, 80년대 학교 합창 전성기입시제도 탓 경연대회 다 사라져학교폭력 해결 큰 도움 될 텐데…"
굳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꺼내지 않아도 우리 민족은 모였다 하면 노래를 즐겼다. 그러나 옛날의 노래가 함께 하는 광장의 문화였다면 이제는 밀실의 놀음이다. 모두들 모니터를 보고 가사 주워 섬기기에 급급하다. 이제 한국인들의 일상 놀이 문화에서 합창은 실질적으로 퇴출된 것이다. 예로부터 함께 즐겨 온 노래의 DNA는 현재 어디 있을까?
윤학원(75)씨 일가. 말 그대로 완벽한 합창 가족이다. 우선 그는 현재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의 자리에 오기까지 합창과 관련한 직함을 여럿 거쳤다. 윤학원 코랄 음악감독, 한국합창지휘 아카데미 원장, 한국합창단연합회 고문, 한국합창단지휘자협회 고문, 한국어린이합창 컨벤셔널 이사장 등 그가 거친 자리의 맨 앞에 연세대 교회음악과 졸업이라는 출발점이 보인다. 1989년 사단법인 서울레이디스 싱어즈를 창단, 2000년까지 맡은 지휘자 직함은 덤이다.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서 윤씨는 합창 전문 교육 기관인 코러스센터를 운영 중이다. 사무국장인 아내 이명원(73)씨를 비롯해 사돈 최훈차(73ㆍ서울신학대명예교수)씨, 아들 윤의중(50ㆍ한세대 예술학부 합창지휘과 교수, 창원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씨가 강의 등 실제 운영을 담당한다.
이 센터 연습실에 사돈 내외를 뺀 일가가 모였다. 피아노를 맡은 며느리 최유정(44)씨의 연주에 맞춰 동요'고향의 봄'을 합창하니 그 풍성한 화음에 연습실은 금새 꽃동산으로 변한다. 서울레이디스 싱어즈에서 합창 지휘와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 딸 혜경(48)씨도 달려 왔다. 부모 유학 시절 미국서 태어나 한국에서 APIS외국인학교 재학 중인 손녀 세라(15)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가 꿈이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여전히 합창 활동을 하는 사부인 장영란(74ㆍ연세대 성악 전공)씨, 오하이오 신시네티 음대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와 피아노를 수업 중인 손자 석원(18)은 그 날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이들은 가족이면서 현장 동료다. 지난해 10월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하나를 위한 음악(M4One)재단' 주최로 열린'그린 콘서트'는 예술이 이 시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 무대였다. 재단의 정명화 예술감독을 비롯해 해금의 강은일, 피아노의 임미정 등 클래식 스타들이 '아프리카 민요 메들리''우리가 세상' 등 환경과 세계를 위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가족의 맨 앞에는 당연히 윤학원씨가 있다. 그는 한국 합창의 역사이기도 하다. 세계성가곡합창연합(IFCM)은 1982년 창립기념 세계 순회공연의 지휘자로 그를 세웠다. 당시 그는 프랑스 현대 작곡가인 풀랑의'G장조 미사'를 악보로 지휘해 화제에 올랐다. 요즘이야 아카펠라라는 말이 귀에 익지만 목소리로만 이뤄지는 음악인 아카펠라의 존재는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터에 난해한 현대곡을 소화한 한국 합창의 느닷없는 출현에 나라 밖 음악계가 긴장할 정도였다.
윤씨는 종종 기념우표에 등장할 만큼 한 때는 일반에도 낯익었던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의 음악 감독으로 국내외에서 38년간(1968년~2006년)이나 활동했다. 이 시기는 중앙대 작곡과 내에 합창 지휘 전공을 창설하는 등 음악교육의 일선에서 활약한 시절과도 겹친다. 1983년 한국 최초의 프로 합창단인 대우합창단을 창단, 5년 동안 이끌었지만 대우그룹 해체로 과거의 일이 됐다. 한편 아들 의중씨는 창단 연주회 때 서울대학생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바흐의 '마그니피카트'를 한국 초연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IFCM 등 주요 음악 단체의 초청으로 이뤄진 세계 연주회는 그의 합창 지휘에 대한 세계의 인정이었다.
작곡 경험을 토대로 한 음악 만들기라고 윤씨는 자기 합창의 비결을 요약했다. 예를 들자면 선명회어린이 합창단 시절 '고향의 봄'을 어린 홍혜경을 솔로로 내세워 상성부의 장식음(데스칸트ㆍdescant)을 유려하게 처리했다. 당시 청중은 경악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디바는 그렇게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소리의 초점을 모으는 작업"이라고 자신의 예술 행위를 압축한다. 합창은 말 그대로 합하는 것. 그런데 모음의 소리를 내는 위치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그것들을 모아 예리하게 다듬는다. 아들 의중씨는 옆에서 지켜보며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아버지는 "테크닉보다는 정신을 통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종교적 의미가 아니다. "사무라이 정신처럼 개인을 초극하는 것", 바로 그가 요약하는 합창이란 예술의 핵심이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개인화되기 십상甄?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예술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정신을 가르친다"고 아들은 풀이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튀지 않아야 타인의 소리가 비로소 들리게 되는 이치다. 듣고 보니 교육의 요체다,
현재 한국은 프로 합창단의 숫자로 보자면 60 개로 세계 최대다. 아마추어 합창단까지 합치면 700여 개에 이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한의 잘 조직된 합창단에 대응하기 위해 예그린 합창단이 만들어지고, 곧 이어 국립합창단으로 발전했다. 이어 서울시립합창단이 생겨나자 곧 인천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것이다.
외국은 아마 합창단이 잘 운영되고 있어 관 주도의 단체를 구태여 만들 필요 없다. 참고로 일본은 아마만 2만여 개인데 프로는 세 개 남짓. 덧붙여 지난해 3월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아시아청소년합창지휘자대회'에 가서 만난 중국의 지휘자와의 대화도 소개했다. 노인 합창단만 2만 개라는 것이다."한국에 공립 합창단이 많은 것은 행정 단체의 경쟁심 때문이죠."결과론적이지만 시립합창단을 중심으로 합창이 발전하다 보니 수준도 향상됐다.
오는 8월 세계합창연합회가 주최하는 격 3년의 제 11회 세계 코랄 심포지엄이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다. 각국을 대표하는 25개의 주요 합창단이 내한해 치르는 이 자리에 윤학원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나간다. 빈에서 열렸던 제 1회 대회에서는 당시 대우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던 윤씨가 아시아 대표로 참가했다. 한국과 세계의 노래를 합창으로 들려준 그 자리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기억이 새롭다.
황해도 옹진 출신인 그는 6ㆍ25 발발 1년 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남하해 인천으로 왔다. 음악의 길을 반대하던 아버지를 거스르고 1957년 연세대 작곡과에 입학, 나운영의 제자가 된다. 3학년 때 교내 합창반을 지휘하다 아내를 만난 그는 "피아노 레슨으로 생활은 책임질 테니 합창단 지휘를 계속 할 수 있는 방송국에 가라"는 격려의 말에 용기를 냈다. 극동방송국 합창단 지휘 일을 맡으면서 들어선 길이다. "쥐꼬리 월급 시절이었죠."
선명회 34년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1978년 영국 BBC 방송의 세계합창경연대회 우승 당시 들었던 "소리가 예쁘다"는 찬사는 한국인 특유의 합창 미학이 됐다. 당시 나인용의 '가시리' 박재열의 '정선아리랑'등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선곡 원칙이 수립된 것. 해외 귀빈이 오면 선명회 합창은 빠지지 않았고 어린 단원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는 영예도 누렸다.
당시는 뮤지컬의 존재가 막 인식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윤씨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감응력이 있었다. 해외 갈 기회만 오면 '캐츠' '미스 사이공' 등 인기 뮤지컬을 보았고, 특히 대중과 적극 소통하는 지휘의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의 무대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새롭고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일념으로 꽉 차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적인 것,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인천시립합창단은 50주년을 맞던 2009년 미국의 ACDA(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로부터 세계 4대 합창단으로 초청됐다. 당시 오클라호마의 3,000석 공연장에서 40여 개국의 합창단 지휘자들 앞에서 공연했던 것이 우효원 작곡의 한국적 선율 '메나리'였다.
인천시향의 전임 작곡가인 우효원은 "한국적, 세계화, 현대화'를 화두로 20년째 계속 함께 실험 중인 사람이다. 합창단이 셋으로 나눠 걸어나오며 노래를 부르는 등 작곡가 특유의 '공간 음악' 이론은 모듬북, 징, 공 등을 우리 고유의 무대에 올리는 파격적 시도로 윤씨의 창조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요염하게 울기도, 악마적으로 부르짖기도 하는 인간의 갖가지 웃음소리를 소재로 한 우씨의'팔소성(八笑聲) 올릴 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클래식 합창, 그것도 진보적인 것은 낯설다. "한국은 입시제도 때문에 합창은 발도 못 붙이는 나라예요." 70, 80년대만 해도 학교마다 있던 합창 경연대회는 사라졌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합창은 절대 혼자 못 한다. 부자의 말은 헛된 소망일까? "결국 동료를 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현재 문제가 출발한 거잖아요. 왕따ㆍ폭력의 문제 해결에 합창단 부활은 실질적으로 큰 도움 줄 겁니다."
교향악단은 지원하지만 합창단은 철저히 외면하는 정부를 이렇게 꼬집었다. "우수한 재능에 첨단 기술의 나라라고 자랑하지만 합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물질적 풍요가 과연 언제까지 갈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