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좋은 기억력은 타고난다, 그러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좋은 기억력은 타고난다, 그러나…

입력
2014.01.19 11:42
0 0

기억력이 기가 막히게 좋은 사람이 종종 있다. 난 도무지 생각 안 나는 옛날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리는 친구를 보면 기억력은 타고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최근 국내 연구자들이 이를 입증했다. 기억력이 타고 난다는 말은 정말 과학적으로 일리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꼭 타고나야만 기억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할수록 후천적 기억력이 선천적 기억력을 얼마든지 능가할 수 있다.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뇌의 신경세포가 기억을 만드는 과정은 바통을 주고받는 이어달리기와 비슷하다. 감각기관을 통해 뇌로 들어온 정보를 감지한 신경세포는 이를 여러 가지 전기신호로 바꿔 서로에게 건네준다. 수많은 신경세포를 거쳐 전달돼 온 신호가 정보 저장소인 대뇌피질(뇌의 겉을 감싸고 있는 회색 부분)에 자리를 잡으면 비로소 기억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이 '해마'다. 해마의 신경세포들이 서로 얼마나 많이, 원활히 연결돼 있느냐에 따라 신호전달 능력에 차이가 난다. 이들 세포 간 소통이 잘 될수록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다. 뇌전증(간질) 때문에 해마를 떼낸 한 미국인이 매일 같은 날짜의 신문을 보며 지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해마가 없으니 자고 나면 전날 기억이 싹 사라졌던 것이다.

신경세포들은 서로 소통하기 위해 다른 세포와 달리 나뭇가지처럼 팔을 길게 뻗는 독특한 구조(수상돌기)를 여러 개 만든다. 서로 다른 신경세포의 나뭇가지들이 계속 연결되면서 신호가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전달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연결 구조가 균일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한 나뭇가지가 일정한 수의 다른 나뭇가지와 연결되는지(균등 연결망), 아니면 어떤 나뭇가지는 유독 많거나 적게 연결되는지(불균등 연결망)가 수수께끼였다. 최근까지는 균등 연결망 가설이 우세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이 최근 자체 개발한 3차원 영상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로 실험용 쥐의 해마 신경세포를 들여다봤더니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나뭇가지가 서로 더 많이 연결돼 효율적으로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세포가 있는가 하면, 연결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세포도 있다는 얘기다. 기억에 필요한 신호 전달은 당연히 연결성이 강한 세포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다.

신경세포 연결 구조가 기억력 결정

연구팀은 서로 강하게 연결돼 있는 세포들이 대부분 '자매 세포(sister cell)'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체의 모든 세포는 부모 세포에서 분열해 자라나는데, 같은 부모에서 나와 같은 시기에 성장한 세포를 자매 세포라고 부른다. 결국 자매 세포가 다른 세포에 비해 기억력에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신경세포의 자매 세포는 배아(난자와 정자가 만난 수정란이 만들어진 직후) 상태에서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해 이후 해마를 비롯한 뇌의 여러 부위로 이동한다. 쥐의 해마는 임신 후 14~16일에, 사람 해마는 임신 20주 안에 발달이 거의 끝난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자매 세포가 해마에 자리를 잡고, 기억력을 가동시킬 준비를 마친다는 얘기다.

해마의 자매 세포는 누구나 갖고 있다. 특별히 누군 많고 누군 적은 것도 아니다. 이번 3차원 영상 분석 연구를 주도한 김진현 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자매 세포의 연결망이 구조적으로 잘 구축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을 수 있다는 의미"라며 "자매 세포와 해마가 발달하는 임신 20주까지의 시기가 선천적인 기억력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공부하세요"

기억력을 좌우하는 선천적인 기반이 태아 때 갖춰지긴 하지만, 사람의 기억력은 이게 다가 아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기억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태어난 뒤의 기억력을 좌우하는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학습과 경험이라고 신경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 연구원은 "후천적인 학습과 경험은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내기도 한다"며 "뛰어난 신경세포 연결 구조를 타고난 사람이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새로운 정보를 얻고 기억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학습이나 경험을 못 하거나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세포 간 연결이 아예 부분부분 끊어질 수도 있다. 신경세포들을 이어주는 나뭇가지 구조는 활동이 뜸해지면 퇴화하기 때문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