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은 17일 2010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부를 상대로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59억5,9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코레일은 지난 연말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파업에 대해 15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노조 재산 116억원의 가압류를 신청했다. 지난달 법원은 2010년 공장을 점거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와 조합원에게 90억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고, 11월에는 2009년 파업을 벌인 쌍용차 지부와 조합원에게 약 47억원을 배상토록 했다. 쌍용차 배상액 중 13억7,000만원은 경찰이 청구한 것이었다.
산업혁명의 고향 영국에서도 태프베일 철도회사 노조의 파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온 일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1901년의 일이다. 1906년 노동당은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상 면책을 법으로 규정, 손해배상을 지렛대 삼아 노조를 통제하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현재 영국은 조합원 수에 따라 손해배상 소송가액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는 통상적인 파업권의 행사가 아닌 폭행, 파괴 등으로 인한 손해 배상만 인과관계를 엄격히 따져 인정한다. 독일의 경우 노조의 민사상 면책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노조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는 이론적 가능성으로 존재할 뿐이다. 대전지법 최누림 판사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선진국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어떠한 방향으로든 경감하려는 시도를 해왔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인 권두섭 변호사는 "외국에서는 돈 많은 기업이 돈 없는 노동자들한테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부도덕한 기업으로 비난 받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실제로 소송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손해배상 소송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노동자에 대한 보복과 위협 수단으로 악용, 남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헌법 정신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헌법 33조는'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기업의 경제적 피해는 집단적으로 노무 제공을 거부하는 파업권의 본질적 부분이다. 폭력이나 파괴 책임이야 따질 수 있겠지만 영업 손실까지 배상해야 한다면 노동 3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송과 가압류로 노조가 위축되고 노동자가 목숨까지 끊는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판례에 기대 기업의 영업손실까지 배상하라는 판결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쟁의권 보장을 위해 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국회는 발의된 법 개정안조차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정부 공권력은 파업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나서며 오히려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 손해배상 책임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인들이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