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온 민족의 그릇이다. 청자나 백자처럼 우아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빛깔과 불룩한 몸통이 흙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독, 항아리 등으로도 불리는 옹기는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옹기는 삼국시대부터 제작했으니 역사가 매우 길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좋다고 칭찬은 하면서도 사용은 하지 않는 그릇이 돼버렸다. 그런 옹기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소장 옹기 419점을 분석해 463쪽에 달하는 자료집 를 냈다.
자료집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옹기를 용도와 기능에 따라 식생활, 주생활, 산업ㆍ생업, 과학기술, 문화예술, 종교신앙 등 6개로 분류했다. 자료집을 기획한 이경효 학예연구사는 "소장 옹기를 용도와 기능으로 분류해 보니 식생활용이 가장 많은 수량(529점)과 비율(77.69%)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옹기는 통기성이 좋아 장과 소금을 저장하거나 발효식품인 김치를 두는데 제격이다. 얼마 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치가 옹기와의 합작을 통해 발효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옹기는 한국의 전통적 식생활의 기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옹기는 질그릇, 오지그릇, 반오지그릇으로 나뉜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반죽해 900도 정도의 열로 구운 후 연기를 침투시켜 만든 그릇으로 윤기가 나지 않는다.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유약인 잿물을 입힌 뒤 1,250도 정도 고온에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는 게 특징이다. 반오지그릇은 제주에서만 생산하는 그릇으로, 유약을 묻히지 않은 채 1,250도의 고온에서 굽는다.
옹기는 기본 재료로 태토(胎土)를 쓴다. 붉은 색을 띠는 황토와 푸르스름한 회색의 점토를 섞은 것이다. 고온에서는 잘 견디나 점력이 없는 황토를 보완하기 위해 점력이 좋은 점토를 첨가한다. 유약으로 쓰는 잿물은 짚이나 콩깍지, 나무를 태운 재와 약토(부엽토) 등을 물에 혼합해 만든 것이다.
50년 넘게 옹기를 만들어 온 무형문화재 제4호 신일성씨는 "통기성과 정화 능력이 뛰어난 옹기는 전통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며 "숨쉬는 바이오 그릇"이라고 설명했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광명단'이라는 유약이 등장, 저온에서 구울 수 있게 되면서 옹기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광명단에 망간을 더할 경우 광택이 두드러져 사람들이 더 많이 찾게 됐다. 하지만 광명단은 인체에 해로운 납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1977년 납 규제법이 만들어진 뒤 사라졌다.
옹기는 1970~80년대 주거 형태가 크게 변하면서 찬바람을 맞는다. 재개발 바람이 불고 편리성이 강조되면서 마당 있는 단독주택 대신 아파트가 증가했는데 이로 인해 옹기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연간 100만대씩 팔리는 김치냉장고까지 등장하자 덩치가 큰 옹기는 퇴출지경에 이르렀다.
옹기에도 문양이 있지만 그 예술적 가치는 말하기가 머쓱하다. 옹기가 완상(玩賞)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쓰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에는 다양한 문양이 있다. 옹기 문양 제작법으로는 손가락으로 그리는 방법(수화문ㆍ手畵紋)과 근개 또는 술테 같은 도구로 새기는 방법(도구문ㆍ道具紋)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다. 문양 형태로는 가로로 선을 낸 횡선문(橫線紋)과 물결 무늬의 파상문(波狀紋)이 많다.
이경효 학예연구사는 "원형의 옹기를 돌려가며 연속적으로 그려낸 문양은 무한한 상상력 그 자체"라며 "장인이 무념무상의 상태로 손가락 가는 대로 그린다고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문양을 만드는 것은 고도의 숙련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경효 학예연구사는 "그런 점에서 옹기 문양을 순식간에 그리는 숙련자의 손은 '현대 문명의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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