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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월 18일] 공무원만 행복한 나라

입력
2014.01.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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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의 공기업 고문 A씨. 중앙부처 고위직(3급)에서 물러나 공공기관 두 곳에서 상임감사로 각 3년씩 6년을 보낸 뒤 또 다른 공기업에서 2년째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연봉 1억5,000만원에 사무실엔 여직원도 있고, 차량도 제공 받지만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60대 초반의 B씨. 30여년 동안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공직생활을 한 뒤 2년 전 은퇴한 그는 공립학교 교사였던 아내의 몫을 합해 매달 550만원의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다. 그는 "고향 인근 지자체에서 정책보좌관 자리를 줘, 주 1회 시장 자문에 응하며 소일하는데 생활이 풍족하다"고 말한다.

공기업 개혁이 현 정부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얼마 전, 전ㆍ현직 관료와 기업체 임직원, 중소기업 사장 등 지인끼리 흉금 없이 터 놓는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이럴 줄 알았으면 공무원 되는 건데"였다. 한국 직장인의 평균 퇴직 나이는 53세로 알려져 있지만, 공직사회에 비해 생존경쟁이 치열한 민간기업 임직원은 50세를 전후로 명예퇴직에 내 몰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 걱정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화제는 철도 파업 및 공기업 개혁 문제로 이어졌다. 정부의 코레일 자회사 분리에 대해 교통공학 박사인 한 공무원은 "같은 일을 하는데 쪼개면 사장도 둘, 역장도 둘 두는 것이니 노조 말대로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강성 노조의 고질적 파업 동력을 약화시키는 데는 효과적"이라며 "서울지하철이 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로 나뉜 뒤 90년대 연례행사 같았던 파업은 사라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이목을 집중시킨 건 공기업 CEO를 지낸 K씨였다. 삼성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때 자신이 맡은, 바닥 수준의 공기업을 285개(현재는 295개) 공공기관 가운데 우수기관으로 올려 놓은 주인공이다. 그는 "삼성의 경영노하우와 조직관리시스템을 3분의 1만 적용해도'엑셀런트'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공기업 인력의 20% 정도는 유휴인력"이라고 단언했다. 공기업 낙하산 인사에 대해선 "차라리 정치권 출신이 낫다. 불필요한 간섭도 하지 않고 거의 예외 없이 2년 안에 떠난다. 하지만 경영마인드는 전혀 없으면서 친정(감독 주무부처) 연줄만 믿고 끝까지 자리 지키기에 연연하는 공무원 출신 임원들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직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새로 교체된 기관장 및 감사 160명 중 절반이 공무원ㆍ정치인이다. 그 중 공무원이 54명으로 가장 많다.

고위 공무원에서 지방대 교수로 변신한 C씨도 한마디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국방대학원에서 1년간 함께 연수를 받은 80명의 중앙부처 국장들 가운데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을 빼고 나머지 전원이 공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차고 앉아 억대의 연봉을 받고 있다"며 "누릴 만큼 누린 사람들이 퇴직 후 안식처로, 아니면 승진에 밀려 공기업으로 가는 공직사회 관행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은 헛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퇴직한 B씨가 정부가 공무원연금을 깎을 것으로 보여 걱정이라고 하자,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공무원의 반발 때문에 연금개혁 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이뤄져도 은퇴한 사람은 대상이 아닐 것"이라며"그렇다고 공무원만 맘 편히 잘 살면 그게 정상적 사회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자리를 함께 하면서 머리 속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과연 4년 남은 단임정부가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으로 하여금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하게 할 수 있을까, 현직에 있을 땐 수족처럼 부리고, 퇴직 후엔 자신의 또 다른 일터로 삼는 공기업을 외부에 개방해 민간의 유능한 인재들과 자유경쟁 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앞섰다. 정부가 말하는 '국민이 행복한 사회'는 공무원의 발상전환, 특히 자기희생 없이는 먼 나라 이야기임을 새삼 확인한, 우울한 모임이었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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