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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상실의 시대, 그는 아직도 우리를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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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상실의 시대, 그는 아직도 우리를 채우고 있다

입력
2014.01.1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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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를 개처럼 따르고 / 개를 식당에서 먹는 나라에 / 아주 젊은 가수가 있었지 / …… / 그대는 한국의 밥 딜런 / 그대는 한국의 커트 코베인 / …… / 천 번째 콘서트가 끝난 뒤 / 그는 방문을 걸어 잠갔지 / 서른두살이었어 / 그는 행복과 슬픔, 성스러움을 노래했지 / 하지만 그땐 아무도 그를 몰랐어 / 한국어로 노래했고 / 1996년엔 유튜브가 없었으니까'

5년 전 독일의 4인조 힙합 그룹 디 오르손스(Die Orsons)는 '김광석(Kim Kwang Seok)'이란 곡의 가사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오르손의 멤버들이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말리러 분주히 뛰어다니는 뮤직비디오에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한 구절이 흘러나온다.

오르손스의 노래처럼 행복과 슬픔, 성스러움을 노래했던 김광석. 살아 있었다면 돌아오는 22일 그는 쉰 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1996년 1월 6일 이후 그의 나이는 서른둘에서 멈췄다. 영원한 청춘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18년 전의 유행은 이미 닳고 닳아 남은 게 별로 없는데, 유독 그의 노래만은 엊그제 막 나온 것처럼 또렷하고 생생하다.

기일과 생일이 함께 있는 매년 1월이면 반복되는 일이지만, 김광석을 추모하는 열기가 올해는 여느 때보다 유난하다. 지난해 시작된 남실바람이 된바람을 거쳐 돌풍이 됐다. 바람의 진원지는 뮤지컬이다. 지난해 그의 음악을 소재로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등 세 편의 뮤지컬이 한꺼번에 제작됐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소극장 뮤지컬인데도 시즌 2가 제작되고 연장 상연되고 있을 만큼 적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장진 감독이 연출을 맡은 '디셈버' 역시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디셈버'는 아이돌 가수인 배우 김준수가 주연을 맡아 10, 20대 여성 관객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론 30대와 중ㆍ장년층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가도 김광석 추모 열풍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김광석의 생전 콘서트 장면을 에피소드로 활용하고 고인의 여러 히트곡을 사운드트랙에 쓰며 추억을 환기시켰다. JTBC의 가수 모창 프로그램 '히든싱어'는 김광석이라는 전설을 끌어들여 큰 재미를 봤고, KBS 2TV '불후의 명곡'도 고인의 기일을 맞아 2011년에 이어 한 번 더 김광석 추모 특집을 마련했다. 김광석을 기리는 책도 나왔다. 지난달 출간된 고인의 육필 원고집 엔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등이 담겨 있다.

김광석을 추모하는 공연도 열린다. 다음달 8일 고인의 고향인 대구에선 김광석이 한때 몸담았던 그룹 동물원을 비롯해 박학기, 한동준, 유리상자, 김조한 등이 경북대학교 대강당에 모여 '2014 김광석 다시 부르기'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한다. 이 같은 인기 덕에 김광석의 히트곡을 모은 베스트 음반은 평소 대비 판매량이 4배 이상 늘며 수주째 주요 온라인 서점의 주간 음반 판매 순위 10위 안에 올라 있다. 날로 높아가는 인기 덕에 생전에 발매됐던 김광석의 LP 음반은 희귀성이 더해져 10만원 안팎에 거래될 정도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김광석의 앨범은 사후 500만장 이상이 팔려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음악이 더 높게 평가 받는 것은 왜일까.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보편적 감수성과 음악 자체의 완성도"를 꼽았고,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내면의 결핍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그의 보컬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동물원의 멤버였던 김창기는 간단히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쓴 류근 시인은 스물일곱에 고인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첫 장에서 그는 김광석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나는 때로 흔해빠진 슬픔과 상실에 무너져 심상에 남아 있는 몇 줄의 고통을 내밀었으나,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을 그의 영혼과 가슴에 끌어안아 세상의 모든 상처 받은 목숨들에게 처절한 구원의 음성으로 되돌려주었다."

상실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가 깊은 위로를 줄 수 있었던 건 그 역시 말로 꺼내기 쉽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김광석이 다섯 번째 앨범에서 부르려 썼던 가사 중엔 이런 글이 있다. '사랑은 그렇게 잊고 사는 것 / 말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어 / 너무도 많은 말에 우리는 지쳐 / 말할 수 없는 게 너무도 많았어 / 헤어나지 못할 사람들 속에 묻혀 / 우리도 그렇게 잊고 사는 것 / 하늘을 볼 수 없이 나는 부끄러워 / 너무도 모자라 / 아 아 가고 싶어 / 아 아 끝이 없는 / 아 아 내 꿈을 찾아'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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