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앨범을 지친 오후 종종 듣는다. 대중가요 연구자 장유정씨가 전곡을 직접 부른 이 앨범은 '1930년대 재즈송 모음'이다. 내가 아는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 라는 곡명처럼 뜨거운 선율이 가슴으로 밀려들 때마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김광석의 앨범들에 가 닿는다.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들이 줄줄이 개봉하더니, 흩어진 글들을 모아 김광석 에세이집 까지 출간되었다. 김광석과 함께 80ㆍ90년대를 논한 글은 차고도 넘쳐 김광석'학(學)'을 만들어도 좋을 지경이다. 에 관한 수천 편의 논문 위에 또 다른 논문 하나를 올리는 마음이 이와 같을까.
내게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중 하나다. 같은 이름의 노래패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꼭 80년대로 국한되진 않는다. 그는'김광석 다시 부르기'란 이름으로 1993년과 95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노래를 다시 부르기 전에는 당연히 부를 곡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찾던 노래를 '발견'하는 떨리는 순간이 있다. 가령 김목경이 만들고 부른 를 처음 듣던 때를 김광석은 이렇게 회고했다.
"89년 여름 버스 안에서 이 노래 듣고 울었어요. 다 큰 놈이 사람들 많은 데서 우니까 참느라고 창피해서, 으흑 막 이러면서 억지로 참던 생각납니다."
노래를 듣고 뭉클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가수라면 그 노래를 연습하여 공연에서 한 두 번쯤 순서에 넣어 부를 만도 하다. 그러나 감동한 노래들을 따로 모아 편곡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담아 앨범으로 발매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90년대 초 자기 이름을 걸고 이런 시도를 한 가객은 김광석이 유일하다.
앨범에는 한대수, 양병집, 이정선, 김목경 등이 부른 노래와 나 같은 대학가의 인기곡들이 함께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광석이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으려 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포크(folk) 중에서도 저항의 목소리를 담은 곡들, 민중의 애환이 담긴 곡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전망을 품은 곡들이 그의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이의 아픔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인기를 끈 노래들과는 다른 빛깔이다.
직업으로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90년대 김광석에겐 이런 고민이 찾아들지 않았을까. 나는 발라드 가수들처럼 '사랑'만 노래하고 싶진 않다. 나는 엄혹한 80년대를 지나왔고, 그 속에서 포크와 민중가요의 건강함과 따듯함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이 둘을 함께 품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이 그를 공부하게 만들었고 지난 곡들을 다시 들추게 했던 것은 아닐까. 김광석은 과거를 소비하지 않고 미래의 바탕으로 삼으려 했다. 그에게 '다시 부르기'는 추억 여행이 아니라 다음 걸음의 방향과 폭을 결정하는 예행연습이었다.
뮤지컬들을 본 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김광석의 노래로 풍요로운 시간이었지만 이 작품들을 기획한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김광석을 과연 노래를 찾는 사람으로 그렸느냐고. 김광석이 개인의 상처와 역사의 고통을 아우르는 감성을 만들기 위해 노래를 찾아 헤맸듯이, 김광석을 찾아 되살려내었느냐고. 추억의 방편으로 김광석과 그의 노래가 쓰이는 것은, 그가 도달하고자 애쓴 감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뮤지컬 배우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풋풋한 연애와 쓰라린 실연을 선보여도, 김광석은 거기 없다.
모처럼 우리 곁에 돌아온 동물원의 김창기는 라는 곡으로 먼저 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이 구절이 눈에 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지만 함께 취해주는 사람들뿐이고 /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남들이 먼저 다 하고 떠나갔고……." 가장 오래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자신의 목소리로 이을 수 있다. 김광석은 2014년 지금도 우리가 다시 찾아서 불러야 하는 오래된 미래다.
김탁환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