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1919~2010)의 이름 뒤엔 늘 '기인' '은둔자' '괴짜'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작가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1965년 단편 '1924년, 햅워스 16일'을 미국 시사지 뉴요커에 발표한 뒤 은둔에 들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탓이다.
샐린저는 병적으로 사생활을 지키려 했던 사람이었다. 랜덤하우스가 를 출판했을 땐 법정공방을 벌여 개인적 편지, 신상정보, 자신이 언급된 인터뷰 기록을 모두 삭제하도록 했다. 이러니 샐린저가 살아 있는 동안 전기를 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 샐린저가 세상을 떠나고 3개월여 뒤 (원제 'J.D. Salinger: A Life Raised High')이 나왔다. 2004년부터 샐린저 웹사이트(DeadCaulfields.com)를 운영해온 케니스 슬라웬스키가 8년간 준비해왔기 때문에 방대한 자료를 담고도 신속하게 출간될 수 있었다.
샐린저 사후 최초로 발표된 전기인 이 책에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샐린저의 사생활이 낱낱이 담겨 있다. 학창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과의 연애, 데뷔 초 수십 차례 잡지 게재를 거절당했던 사연, 비밀리에 치러진 첫 결혼, 동양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 등 샐린저의 팬이라면 궁금했을 법한 내용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7,000만부가 팔린 에 관한 일화들은 이 책의 핵심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애초부터 걸작으로 인정받았던 건 아니었다. 원고를 처음 읽은 편집자마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고, 출판사 부사장도 작품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뉴요커'는 원고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샐린저의 글쓰기 스타일에 훈계까지 했다.
은 결국 샐린저에게 어마어마한 성공을 안겨줬다. 그도 처음에는 대중의 관심을 즐겼다. 그랬던 그가 왜 사람들에게서 숨으려 했을까. 슬라웬스키는 이렇게 적었다. '막상 유명세를 치르고 보니, 사람들의 요구 앞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 안으로 숨고 싶은 새로운 성향이 원래부터 있었던 사교적인 본능과 충돌했다.'
저자는 샐린저의 삶을 조망하면서 작품들이 쓰인 맥락을 두루 살핀다. 뿐만 아니라 초기 작품들, 등의 작품들의 진수를 파악하려면 그의 삶과 사상적 궤적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이 드러난다. '1924년, 햅워스 16일' 발표 이후 45년간의 행적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50쪽 미만이어서 은둔 시기의 미스터리가 풀리진 않는 데다 저자의 '팬심'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거슬리긴 하지만,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삶을 추적하는 데 힘을 기울여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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