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을 조명한 TV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대하사극 은 시청률 11%대로 출발이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특히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50~60대 중년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 정도전의 거침없는 개혁작업을 보며 현실정치의 답답함을 달래려는 것 아닌가 싶다.
■ 정도전의 가장 큰 업적은 토지개혁이다. 고려 말은 사회 양극화가 극심했다. 권문세족의 토지는 산과 강을 경계로 삼을 정도로 넓었다. 반면에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도 갖지 못했다. 정도전의 목표는 계민수전(計民授田). 모든 논밭을 몰수해 인구비례에 따라 백성들에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로 권세가들에게는 수조권(收租權)을, 농민에게는 경작권을 주는 절충안인 과전법 채택에 만족해야 했다. 이것만으로도 백성의 지지를 얻어 새 왕조를 여는 원동력이 됐다. 중산층 육성이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 정도전이 꿈꾼 정치는 재상 정치였다. 그는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설계했다. "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재상은 왕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왕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조선경국전) 현군을 만들거나 폭군이 나오는 것 모두 재상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 정도전이 모시고자 했던 통치자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왕도 아니고, 백성 위에 군림하는 독재형 왕도 아니다. "재상이 선 채로 소매 속에 넣어가지고 온 문자를 몇 줄 읽고 훌쩍 나가버리는 형식주의가 아니라, 왕과 재상이 상호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해 진지하게 협의해야 하며, 협의 사항도 큰 일에 한정하고 작은 일은 재상이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해야 한다." 600년 전 개혁가의 말은 요즘 위정자들에게 호통을 치는 듯하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절반만 귀담아 들어도 우리 정치 수준이 한결 높아질 것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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